통화옵션파생상품인 키코(KIKO)를 놓고 은행과 기업들간의 장기간 소송전이 은행의 '판정승'이 됐다.
법원은 키코 계약이 불공정하거나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에 위배된다고 볼 수 없는 반면, 몇몇 은행들의 불완전판매에 대해서는 기업에 배상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31부(재판장 황정과 부장판사)는 29일 키코계약에 대해 "키코 계약의 구조가 불공정하거나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에 위배된다고 볼 수 없으며 착오나 기망에 의한 계약이라는 기업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다만 은행이 계약 과정에서 고객 보호 의무를 다했는지 사건 별로 판단해 기업에 적합한 상품인지 제대로 검토하지 않았다면 손해를 배상하도록 했다"고 기준을 제시했다.
키코는 환율이 일정 범위에서 움직이면 시장가격보다 높은 환율로 외화를 팔 수있지만, 환율이 지정된 상한선을 넘으면 계약 금액의 2~3배를 시장가격보다 낮은 환율로 팔아야 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키코 상품에 계약된 중소기업들은 2008년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면서 많은 환차손을 봤다며 은행을 상대로 141건의 소송을 냈으며 법원은 이날 91건의 판결이 선고했다. 은행은 상황변화를 이유로 자유의사에 따른 계약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맞섰다.
앞서 2월 초 선고된 키코 첫 판결에서 법원은 "옵션 계약으로 은행이 얻는 이익이 다른 금융거래에서 얻는 것에 비해 과다하지 않다"며 은행의 손을 들어준 이후 나온 이번 판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재판부는 외환은행이 에스앤제이와 계약을 하면서 고객 보호 의무를 위반한 점이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에스앤제이는 외환은행을 상대로 부당이득금을 반환하도록 하는 청구소송을 제기했으며 법원이 외환은행의 불완전판매를 인정하고 1억원을 에스앤제이에 배상토록 판결을 내렸다.
키코피해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는 이번 재판부의 판결을 놓고 "더 늦기 전에 조속한 검찰 수사를 통해 금융사기의 전모를 명명백백히 밝혀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공대위는 이날 "금융사기의 실체를 파헤치고 단죄하는데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오히려 면죄부를 주는 동시에, 사실관계 왜곡까지 묵인했다는 점에서 안타까움과 허탈감을 감출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거대 금융권력에 대해 최소한의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있게 단죄해줄 것을 믿으며 대한민국의 경제정의를 바로 세워 주리라 기대해 왔다"며 "그러나 이 땅의 사법정의는 거대 금융권력이 저지른 금융사기에 대하여 실체적 진실을 져버리고 납득할 수 없는 법과 논리들을 내세워 외면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더 늦기 전에 조속한 검찰 수사를 통해 금융사기의 전모를 명백히 밝혀야 한다"며 "우리는 국민과 함께 흔들림 없이 키코로 인한 금융사기의 실체를 밝히고 분명한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모든 수단을 동원해 투쟁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