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자동차하면 으레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있다. 'SUV 명가'라는 표현이다. 최근에는 체어맨과 같은 대형 세단에도 힘을 내고 있지만 코란도, 무쏘 등 주옥같은 SUV들이 오늘날의 이미지를 만들었으리라. 렉스턴은 이 같은 명차 중에서도 손꼽히는 쌍용차의 플래그십 모델이다.
모래 바람을 일으키며 사막을 달리는 척 노리스나 첨벙거리며 물웅덩이를 건너는 오프로드 차량, 혹은 석양 무렵 해변 캠프장에서 어린 아들을 들어 올리는 자상한 아버지 등이 절로 오버랩되는 SUV에 거금을 투자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국내 시장에서 렉스턴은 '대한민국 1%'의 문구를 앞세워 도심 속의 럭셔리 이미지를 이끌어냈다. SUV에서 이브닝드레스를 입은 모델이 내리는 것은 더 이상 어색한 모습이 아니다.
그리고 2010년 이제 우리는 RX4의 등장으로 2500만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대한민국 1%의 자부심을 얻을 수 있게 됐다.
RX4는 기존 렉스턴에 2.0ℓ XDi200 XVT엔진을 얹은 모델이다. 배기량은 기존 2.7ℓ에서 낮아졌지만 중후한 이미지는 잃지 않았다. 실버 컬러의 라디에이터 그릴과 삼각형 헤드램프에선 '체어맨'의 품격이 전해진다. 오래 봐도 질리지 않는 명품, 체어맨의 얼굴이다. 중후함만 있는 것이 아니다. 투톤 가니쉬와 트윈 테일 머플러에서는 SUV 특유의 터프하고 역동적인 기운이 뿜어 나온다.
운전석에 앉으니 황량하면서도 장난기 넘치는 쌍용차 특유의 디자인이 눈에 들어온다. 널찍한 실내에 비해 대시보드나 센터페시아는 단조롭다. 속도계를 가운데에 배치한 계기판은 고급스런 이미지에 맞지 않게 심심한 인상을 주지만 밤이 되면 선명한 녹옥 빛깔을 뽐낸다.
센터페시아 역시 원형 디자인의 CDP를 중심으로 공조장치 등이 조작하기 쉽게 배치돼 있다. 반면 마치 꽃게 등껍질을 엎어놓은 인상의 스티어링 휠은 갖가지 조작버튼을 정신없이 달고 있어 우드그레인 장식에도 불구하고 고급스러운 이미지가 조금 퇴색되는 느낌이다.
148마력의 출력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초기 렉스턴이 120마력이던 시절이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오히려 출력이 좋아진 셈. 게다가 RX4의 공차중량은 1910kg으로 1995kg의 카이런 2.0보다도 가볍다.
수치상으론 부족해보이지만 SUV가 달리기 위한 차가 아니라는 점을 따져보면 RX4의 출력은 적당한 수준이다.
밑그림이된 엔진은 벤츠의 OM661 LA 2.3ℓ 유닛이었다. 쌍용차는 이 엔진의 배기량을 2.0으로 줄이고 커먼레일 시스템을 얹어 제대로 활용하고 있다. 반면 그 탓에 가속 페달을 반 이상 밟아야 진짜 힘을 내는 특성은 벤츠와 꼭 같다. 출발할 때 다소 힘이 달리는 인상을 주지만 익숙해지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보다 역동적인 주행을 원한다면 6단 E-Tronic미션이 빛을 발한다. T-Tronic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E-Tronic은 수동 모드에서 기어 노브나 스티어링 휠의 버튼만 살짝 건드리는 것만으로도 자유자재로 변속이 가능하다.
1840mm로 차체가 비교적 높은 편이지만 안정적인 핸들링을 보여주며 빗길이나 급선회 구간에서도 무리 없는 차체 제어와 조향 능력을 자랑한다. 다만 주행안정장치 ESP는 옵션으로나마 마련되지 않아 아쉬울 따름이다.
플래그십 모델은 단순히 '비싸고 좋은 모델'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제조사의 기술과 품격이 집약된 아이콘과 같은 존재다. 중형 세단을 살 수 있는 가격에 프리미엄 등급 SUV를 탈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기본가격(2495만 원)에 옵션으로 마련한 전자식 파트타임 4WD(180만원)와 사이드 에어백+선루프 패키지(75만원)만 더해지면 2.7 모델 부럽지 않다.
자, 설렁탕을 사먹을 수 있는 돈으로 600g 뉴욕 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게 됐다. 어떻게 하겠는가?
그리고 여기 렉스턴 RX4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