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되레 딸부자가 부러운 세상
저출산 이면 문화인식 변화 주목돼
며칠 전, 세종시 조치원읍 당산로 버스 정류장에서 우연히 만난 동네어른으로부터 흥미로운 이야길 전해 들었다.
당신 경로당 친구 중에 ‘기초수급(대상자)’이 세 사람 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100만원이 훌쩍 넘는 최신 휴대폰을 장만했노라 자랑하더라는 것이다. 동네어른 말씀인 즉, 자신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꿀 거액의 휴대폰을 산 주인공은 예전 아들 못 낳는 집에 아들 낳아준 여편네라는 게다.
그때는 아들만 (본처네) 호적에 올려주고 자신은 그대로 남아서, 혼인 흔적 없는 처녀에다 남편도 없고 자식도 없는 처지라, 신청만 하면 무조건 기초수급자 자격을 얻는다는 이야기였다.
“이 여편네 말고도 똑같은 경우가 당신 알기로 서너 건은 더 있다”는 꿀정보(?)까지 덧붙였다.
불현듯 1992년 10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절찬리에 방영되었던 MBC 주말드라마 ‘아들과 딸’에 적나라하게 그려졌던 당대 남아선호의 민낯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1995년 교수로 부임한 첫해 1박 2일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갔는데, 그 자리에서 어린 시절부터 딸이라고 차별받던 억울함과 아들이 아니라고 구박받던 서러움을 토로하며 펑펑 울던 학생들 두어 명의 얼굴 또한 되살아났다.
2000년대 중반 한국을 대표하는 1세대 인구학자 서울대 권태환 명예교수님이 남긴 인터뷰 내용 중에도 곱씹을 만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1976년인가 호주에서 열린 세계 인구학대회에서 한국의 남아선호는 뿌리가 깊긴 하지만 산아제한을 통해 출산율을 낮추는데 장애 요인이 되지는 않을 것이란 의견을 내놓으셨다고 한다.
당시 그 자리에 있었던 구미의 인구학자들 반응은, 아들을 낳으려면 딸도 낳아야 할 텐데 출산율을 어떻게 떨어뜨릴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분위기였다고 했다.
하지만 한국은 1962년 가족계획사업을 실시한 이후 불과 20여 년 만인 1983년에 이르면 인구대체 수준인 출산율 2.1명을 기록한다(서울은 2년 앞선 1981년에 2.1명을 기록했다).
이처럼 급격한 하강곡선은 중국과 베트남과 비교해서도 낙폭이 매우 큰 편이다. 일단 사업은 소기의 성과를 거두며 대성공을 이룬 셈이다.
한국의 기혼여성들은 산아제한을 통해 출산율을 보기 좋게 떨어뜨리는 대신 아들은 골라 낳는 묘수를 선택한 것이었다. 그 결과, 심각한 성비 불균형이 초래되었음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요, 공식 통계로도 확연히 밝혀졌다.
실제로 출생 성비는 1990년 116.5로 정점을 찍은 후(그해가 바로 백말띠 해였음을 기억하는지요), 1990년대 내내 110.0 수준을 유지했다. 셋째 아이의 출생 성비는 132.0까지 기록했으니, 아들을 낳아야만 했던 절박한 심정이 손에 잡힐 듯하다.
성비 불균형이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던 시기에 한 여성단체가 주관한 초등학생(당시는 국민학생) 대상 글짓기 대회에 “나도 이다음에 남자 첩을 둘거야”라는 제목의 글이 제출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1990년대 중반에는 “며느리도 수입하시렵니까?”라는 공익성 광고 문구가 신문지면에 등장하기도 했다.
이제 세월이 흘러 2007년 한국의 출생 성비는 106.2명으로 마침내 정상 범위에 들어섰다. 2022년에는 104.7명으로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하기도 했다.
비슷한 시기 10명 중 4명의 여성이 하나만 낳는다면 딸을 낳겠노라 응답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뜻밖에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러운’ 세상이 온 셈이다.
그 옛날 딸만 줄줄이 낳고 아들을 못 낳아 한숨과 눈물로 지새우던 엄마의 서러움을 가까이서 지켜봤던 딸들이, 경쟁적으로 엄마를 떠받들며 효도를 일삼는 덕분에, 지금은 딸부자 엄마들이 주위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고 있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거꾸로 아들딸 당당히 차별해가며 지극정성으로 키운 아들로부터 보기 좋게 버림받은 엄마의 이야기도 소곤소곤 뒷담화의 단골 주제 아니던가.
한국사회에서 출생 성비가 차츰 정상을 회복하는 동안, 합계출생률 곡선은 계속해서 내리막길을 걸어왔음은 나름 의미심장하다.
저출산(생) 이면에 부계중심의 직계가족 원리와 남아선호의 깊은 뿌리를 짧은 시간 안에 거의 무력화시킨, 사회문화적 차원의 변화 흐름이 폭넓게 자리하고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