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인수·합병(M&A) 시장이 얼어붙고 있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기업들의 주머니 사정에 넉넉치 않은데다가 경영악화로 자금난에 빠진 대기업 그룹들이 줄이어 계열사 매각에 나서면서 매물만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당분간 M&A 시장은 산업은행과 자산관리공사(캠코) 등 국책 금융기관과 외국계 대형 사모투자펀드(PEF)을 중심으로 거래가 이뤄지고, 매각기간도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1일 재계에 따르면 건설업계 1위인 대우건설이 3년 만에 다시 기업 M&A 시장에 나오는 등 경영악화로 기업들이 새주인 찾기가 한창이다.
특히 현대건설, 대우조선해양, 하이닉스, 대우인터내셔널 등 새주인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업계 판도가 크게 달라질 수 있는 대어(大漁)급 기업들이 매물로 나오고 있다.
그러나 공급이 수요를 넘어서는 '공급초과' 현상이 일어나면서 M&A 시장이 급속히 얼어붙고 있다. 또 경기불황이 지속되면서 기업들이 불확실한 경영환경 극복을 위해 돈주머니를 움켜쥔 채 눈치만 살피면서 장기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연초 매각방침을 밝혔던 하이닉스는 자산매각과 유상증자로 유동성 문제가 일단락 됐지만 매각작업 착수가 계속 지연되고 있는 상황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해 한화그룹이 인수의사를 철회하면서 다시 M&A 시장에 나왔지만 구체적인 매각일정조차 결정하지 못한 채 산업은행과 한화간 인수이행보증금 3150억원을 두고 소송에 들어갔다.
현대종합상사도 우여곡절끝에 현대중공업이 우선협상자로 선정됐으나 끝내 가격편차를 좁히지 못한 채 무산됐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현재 재매각을 검토 중에 있다"며 "올해 하반기에는 구체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우인터내셔널도 캠코가 '연내 매각작업 착수, 내년 하반기 매각완료'라는 스케줄을 제시했다.
하지만 M&A 시장에서는 자금시장이 얼어붙은데다가 3조원 이상의 대형 매물이 많아 예정대로 매각절차가 진행되기가 쉽지 않다는 관측이 많다.
M&A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터진 세계 금융위기 등으로 대기업들의 자금사정이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며 "특히 금융권에서 자금을 내놓지 않고 있는 상황이어서 대기업이라도 대형 매물 인수를 쉽게 결정하기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건설부문의 경우 현재 대우건설, 현대건설, 쌍용건설 등 매물이 많이 나와있어 매수자 입장에서는 급하게 M&A에 나서기 보다는 리스크를 최대한 줄이고자 한다"면서 "결국 자금 문제와 공급초과로 인해 M&A 시장에 나온 기업들의 매각 일정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자체 유동성이 풍부한 기업들도 국내기업 M&A보다는 해외시장을 타킷으로 한 글로벌 M&A를 염두에 두고 있는 상황이다.
SK그룹은 해외 자원개발 회사와 신재생에너지 관련 기업 인수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두산그룹도 체코의 터빈발전기기업체 인수에 투자할 예정이다.
대우건설 인수자로 거론되고 있는 포스코는 해외제철소 인수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으며 효성도 굿이어나 아그파 필름 등 해외 M&A에 더 신경을 기울이고 있다.
3년 전 대우건설 매각시 입찰에 참여했던 한화그룹도 당분간 시장 상황을 보면서 숨고르기 시간을 갖는 한편 신성장동력 확보에 집중한다는 방침이여서 건설 보다는 신재생에너지 관련 기업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당분간 대기업보다는 국책 금융기관과 외국계 사모펀드를 중심으로 M&A 거래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산은은 현재 아부다비투자청(ADIC) 등 해외 대형투자자와 국민연금 등 국내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PEF 투자자금 유치 협상을 물밑에서 진행 중이다.
캠코도 정부보증 기금체권 발행을 통해 최대 40조원 규모로 구조조정기금을 조성, M&A 시장에 뛰어들겠다고 밝힌 바 있다.
KKR와 블랙스톤과 같은 외국계 PEF들도 외국계 투자은행을 대신해 국내M&A 시장에 투자를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M&A업계 관계자는 "금융권과 외국계 투자펀드를 중심으로 M&A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다만 일부 기업들은 적은 규모의 M&A 중심으로 리스크 관리와 병행해 투자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