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영수증 내용 삭제해 제출한 ‘증거 조작’ 직원도 징계 요구
이재환 전 부사장 “문제 되는 일 전혀 한 적 없어…공사와 법적대응”
지난해 11월 물러난 이재환 전 한국관광공사 부사장에 대한 감사 과정에서 공사 직원이 조작된 증거를 제출하다 적발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이 전 부사장이 직제상 없는 부사장 직위를 신설하고, 업무용 차량 3대를 전용차로 사용하면서 개인 홍보 영상 제작을 지시하는 등 당시 불거진 의혹도 사실로 확인됐다.
20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관광공사 감사실은 지난해 말 이 전 부사장 비위 의혹 및 부적정 발언에 대한 특정감사를 벌여 직원들의 불법·부당 행위를 추가로 파악했다.
감사실에 따르면 공사 직원 A 씨는 지난해 6월 해외 행사 영상 편집을 외부업체에 맡기고 예산 300만 원을 지급했다. 이후 이 전 부사장의 지시에 따라 개인 홍보 영상을 따로 편집해 제작해달라고 업체에 요구했다.
4분짜리 개인 홍보 영상에는 이 전 부사장의 얼굴만 100여 번 등장했다. 당시 업체 영수증상 적힌 문구도 ‘이재환 부사장 스페셜 영상’이었다.
그러다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이 전 부사장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자, A 씨는 업체를 다시 찾아가 영수증에 적힌 ‘이재환 부사장 스페셜 영상’ 문구를 삭제한 뒤 새로운 영수증을 받아 감사실에 증빙 자료로 제출했다.
공사 관계자는 “해당 문구가 본인에게 불리하게 적용될 것으로 보고 증거를 조작해 제출한 것”이라며 “영수증 원본을 가지고 있던 감사실은 A 씨가 허위자료 제출로 감사를 방해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감사실은 추가 홍보 영상 제작에 관여한 다른 직원 B 씨도 계약법상 업체에 의무 없는 행위를 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봤다. 이에 조작된 증거제출에 따른 감사방해, 홍보 영상 제작 지시 이행 부적정 등 사유를 들어 두 직원에게 징계 처분을 내려달라고 공사에 요구했다.
지난해 제기된 이 전 부사장의 비위 의혹의 실체도 드러났다. 감사실은 이 전 부사장이 기구표에 부사장 직위를 표기하도록 해 사실상 직제에 없던 자리를 만들고, 본인이 가진 권한의 범위를 넘어서서 행사했다고 결론 내렸다.
애초 사장 부재 시 선임본부장이 부사장을 대행했지만, 이 전 부사장 요구로 위임전결 규정은 그대로 둔 채 본부장 위 부사장직 자리가 새로 생겼다. 이 전 부사장은 사장 직속인 홍보팀부터 인사, 타본부 등에 업무 지시를 하고 결재는 받으면서도 정작 책임질 권한은 없었던 셈이다.
또 원주 본사로 정해진 근무지에 ‘서울센터’를 추가 지정해 사장·부사장이 동시에 본사를 비우는 상황이 빈번했고, 부사장은 전용차량 제공 대상이 아니었음에도 업무용 차량 3대를 요구해 전용차로 지원받아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공사 관계자는 “부사장 사임 이후 이사회를 통해 부사장 직제를 없앴다”며 “재발 방지를 위해 본부장 책임경영제를 도입하고 위임전결 규정을 손봤다. 내부 통제위원회도 신설해 여러 사안을 점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전 부사장은 감사 내용을 전면 부인했다. 이 전 부사장은 본지와 통화에서 “당시 청렴하게 근무하기 위해 문제가 되는 일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며 “법인카드도 받지 않고 개인 돈을 썼다. 상식적으로 공용차를 3대씩 탔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개인 홍보 영상을 왜 공사에서 만들겠나”라며 “부사장직은 원래 있던 직제였고, 적법하게 이사회 때 안건을 내고 의결을 거쳐 수직적 직제로 변경했다. 현재 공사 측에 내용증명을 보낸 상태고, 법적 대응을 준비 중”이라고 해명했다.
이 전 부사장은 국무총리실 직속 재외동포 정책위원, 한국창업진흥협회장, 경기도지사 경제특별보좌관 등을 거쳐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 인수위 경제2분과위원회 상임자문위원을 지냈다. 2022년 12월 관광공사 부사장으로 취임했다.
한편, 서울 수서경찰서는 지난해 10월 관광공사 국정감사에서 위증 및 국회 모욕 혐의로 고발됐던 이 전 부사장에게 21일 '혐의없음'으로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