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실패했을 때, 일본인은 타인이나 외부 환경을 탓하기보다는 ‘내가 부족해서 실패했을 거야’라고 생각하지만, 한국인은 일본인과는 반대로 자신을 탓하기보다는 ‘저 사람이 잘못해서 그래’라고 생각하거나 ‘환경이 받쳐주지 못해서 실패했어’라고 믿는다. 한국인 특유의 강력한 의지를 표현하는 ‘하면 된다’ ‘안 되면 되게 하라’ 문구도 가벼운 판타지에 기반한다.
남을 돕는 원조전문가도 마찬가지다. 나에게 자문을 요청하는 사회복지사 동료들에게 질문을 받아 보면, 대부분 ‘어떻게 하면 이 분을 좀 더 잘 도울 수 있을까요?’라고 묻는다. 이 질문을 깊이 들여다보면, 이런 암묵적인 전제를 느낄 수 있다. “아직 저 분을 돕는 효과적인 요령이나 방법을 잘 몰라서 그럴 뿐, 나는 이 분을 더 잘 도울 수 있다.” 과연, 그럴까?
어떤 경우엔,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존재하고, 단지 내가 모를 뿐일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방법을 알면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내가 가진 능력을 실제보다 좀 더 높게 생각하는 한국인 특유의 가벼운 판타지’에 기반했다면? ‘문제를 단박에 해결할 수 있는 그 방법’은 처음부터 없을 수도 있고, 있어도 당장은 못 쓸 수도 있다.
특히, 타인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바꾸고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는 상황이라면, ‘실제 자신이 가진 능력보다 더 유능하다’고 믿는 바로 이 한국적 판타지 때문에 일이 안 풀리고 있을 가능성이 훨씬 더 높아진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일까? 의외로 간단하다. ‘안 되는 건 안 된다’는 사실을 수용하고, ‘그나마 조금이라도 될 수 있도록’ 목표를 현실적으로 세워야 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상대를 바꾸어 놓겠다는 비현실적 목표는 잠시 내려 놓고, 느긋하고 여유롭게, 내가 먼저 다가가서 그의 리듬에 맞추어야 한다. 물론, 이렇게 해도 잘 안 될 수 있다. 그러면 포기해야 한다. 때로는 깔끔한 포기가 예상 못한 기회와 성공을 낳는다.
이재원 강점관점실천연구소장·임상사회사업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