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A 씨는 수도권 한 토지를 3억 원에 매수한다는 계약서를 쓰고 도장을 찍었다. 얼마 뒤 A 씨는 계약 금액이 4억 원으로 늘어난 계약서를 받았다. 토지 판매 업자들이 A 씨의 인감도장 모양을 똑같이 본 떠 계약금을 바꾸고 계약서를 다시 쓴 것. A 씨는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계약서가 교체됐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어 울며 겨자먹기로 웃돈을 주고 땅을 샀다.
#2. B 씨도 부동산 계약을 하다 사기를 당했다. 계약서 앞장을 접어 여러번 간인을 찍었지만 주요 사항이 담긴 계약서 한 장에 전혀 다른 내용이 포함됐고, B 씨가 찍은 간인도 그대로 남아있었다. B 씨는 계약서 다른 장에 찍힌 간인과 바뀐 계약서 간 ‘인주성분’을 비교해달라며 대검찰청에 감정을 맡겼지만, 동일 여부를 판단할 수 없었다.
이처럼 타인의 도장을 복제하며 발생하던 ‘인감 위조 사건’이 앞으로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대검찰청이 보다 정확한 인주 동일여부 감정을 위해 국내 시판 인주를 분석해 DB(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인주성분 동일성 감정에서 명확한 지표를 통해 물증의 신빙성을 높일 것으로 보인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검 과학수사부 법과학분석과 문서감정실은 ‘국내시판 인주 분석 자료 DB화’ 연구용역을 끝낸 뒤 내년부터 해당 DB를 적용할 예정이다. DB를 활용하면 계약서 등 문서에 사용되는 인주의 색상과 농도를 분석해 동일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지난해 기준 대검찰청에 의뢰된 인주 동일여부 감정 건수는 28건이다. 전체 문서 감정 의뢰건 중 3% 정도지만, 문서 감정 분야의 특이성에 비춰보면 적지 않은 비율이다. 여건상 각종 계약서 작성이 필수이기 때문에 매년 비슷한 비율로 의뢰된다.
그간 인주의 동일성을 판단하는 특별한 방법이 없어 문서 위조 관련 분쟁이 잦았다. 기존 감정 방식은 광학현미경과 분광비교측정장비를 이용해 인주가 어떤 형태로 지면에 흡착됐는지, 각 파장대별 색상과 농담(濃淡)을 비교하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색상과 농담에서 미세한 차이를 보일 경우 인주 양(量)에서 기인한 것인지, 인주 성분의 차이인지 명확한 판단이 어려웠다.
이에 대검은 총 73종에 달하는 국내 유통 인주시료를 수집해 성분을 분석했다. 한국, 일본, 독일 등 생산국은 6곳이었고, 제조사만 33개였다. 유형별로 스탬프 패드형 인주, 만년도장, 충전용 인주 잉크 등을 모두 전수조사했다.
검찰은 이 시료를 물리적 특성으로 분석했다. 변연부(볼록판 인쇄에서 잉크가 진하게 묻는 부분)와 인주입자, 색상별로 구분해 시료를 분류했다.
또한 분광비교측정장비(VSC)와 적외선분광기(FT-IR) 등을 이용해 분광학적 특성도 분석했다. 이렇게 분류한 인주들을 시료의 특성별로 코드화했다. 이 코드를 토대로 식별법을 만들어 판단 지표를 만들었다.
그 결과 대검은 문서에 찍힌 도장의 인주 생산회사(국가) 및 상표 감정을 할 수 있게 됐고, 인주성분 동일 여부도 판단이 가능해졌다. 각 시료별 특성과 유형을 분류해 구축한 DB로 인주 성분을 특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대검 문서감정실 관계자는 “애초 인주 동일여부 감정은 판단불명률이 80% 이상으로 매우 높았다”며 “이번 DB 구축을 통해 인주 동일여부 감정 판단불명률이 0%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