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우리 경제의 부진 흐름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지만 경기 저점을 시사하는 지표들이 늘고 있다고 진단했다.
제조업 중심으로 경제가 부진하지만 반도체·대(對)중국 수출 감소폭 축소, 소비자심리지수 상승세 지속, 물가 상승세 둔화 지속 등이 나타면서 경기 반등 도래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KDI는 11일 발간한 '6월 경제동향'에서 "최근 우리 경제는 제조업을 중심으로 부진한 상황이나, 경기 저점을 시사하는 지표들이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올해 1월부터 6월 경제동향까지 경기 부진이 지속되고 있다는 평가지만 이달에는 종전 진단과 달리 경기 반등 도래 여지를 언급한 것이다.
제조업 경기는 여전히 암울한 상황이다. 4월 전산업 생산은 전월보다 1.4% 감소했다. 전자·통신을 제외한 제조업 생산이 1.7% 줄어든 것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 3월에 35.1%나 급증했던 반도체 생산이 0.5% 증가하는 데 그쳤고, 기계장비와 의약품도 각각 6.9%, 8.0% 줄었다.
반도체, 화학제품을 중심으로 제조업 출하가 줄고, 재고는 늘면서 재고율(재고/출하율)은 3월 117.2%에서 4월 130.4%로 13.2%포인트(p) 상승했다. 이는 관련 통계가 작성된 지난 1985년 이래 사상 최대다.
다만 제조업 경기과 연관성이 큰 반도체와 대중국 수출의 감소폭이 축소되는 등 경기 부진이 심화되지는 않는 모습이라고 KDI는 분석했다.
지난달 반도체 수출액은 전년보다 36.2% 줄었지만 전달 감소율(-41.0%)보다는 완화됐다. 대중국 수출은 100억 달러대를 회복했고, 휴무일을 뺀 월중 조업일수를 기준으로 한 일평균 수출액(4억9000만 달러)은 작년 10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나타냈다.
올해 4월 소비 동향을 보여주는 소매판매는 전월보다 2.3% 줄었지만, 5월 소비자심리지수는 98.0로 3월 이후의 완만한 상승세가 지속되며 기준치(100)에 근접하는 등 소비 부진 완화를 시사하는 긍정적 신호가 유지됐다고 KDI는 평가했다.
KDI는 소비자물가 상승세 둔화가 지속되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인 신호로 봤다.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3.3% 올라 2개월 연속 3%대 상승률을 지속했다. 3.3% 상승은 2021년 10월 이후 19개월 만의 최저 상승을 기록했다. 전기·도시가스 요금 인상에도 불구하고 석유류 등 수입가격이 하락하고 기저효과도 작용하면서 소비자물가 상승세는 점차 안정되는 모습이란 분석이다.
이러한 흐름이 지속되면 올해 상반기보다는 하반기에 경기가 나아지는 '상저하고(上低下高)' 전망에 힘이 실릴 가능성이 크다.
KDI는 지난달 5일 올해 상반기와 하반기의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각각 0.9%, 2.1%로 제시했다. 상반기보다 하반기의 성장률이 높다는 것이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KDI 등 기관들이 하반기에는 상반기보다 훨씬 좋은 성장 전망 수치를 제시했다"며 "이를 고려할 때 전반적인 경기 흐름이 하반기가 상반기보다 높아진다는 흐름상의 전망은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