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강행 처리하겠다고 예고했던 간호법 제정안의 국회 본회의 상정이 보류됐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여야 합의를 촉구하면서 27일 본회의로 상정을 미뤘지만, 정부·여당이 최근 마련한 중재안에 간호협회가 '수용 불가' 입장을 내놓은 만큼 갈등은 계속될 전망이다.
민주당은 13일 오후 열린 본회의에서 간호법 제정안을 표결에 부치기 위한 '의사일정 변경 동의 안건' 처리를 요구했지만, 김 의장이 여야 추가 논의를 요구하면서 제동을 걸었다. 김 의장은 "각 교섭단체 대표 의원과 협의한 결과, 정부와 관련 단체 간의 협의가 진행되고 있다"며 "여야 간 추가적인 논의를 거쳐서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할 수 있도록 간호법 제정안은 다음 본회의에서 처리하기로 하겠다"고 밝혔다.
법안 상정이 보류되자, 더불어민주당은 다음 본회의가 예정된 27일에 간호법을 강행 처리할 것을 예고했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1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간호법은 지난 대선 양당 후보의 공통 공약으로, 오랜 시간 상임위에서 충분히 숙의해 의결했고 국민 공감대를 얻은 민생법안"이라며 "정부·여당이 갈등 조정 대신 갈등 조장에 나서는데 손 놓고 있으란 말이냐"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오는 27일 본회의에서는 반드시 원칙대로 간호법과 의료법을 포함한 민생법안을 처리하겠다"고 언급했다.
간호법 제정안은 현행 의료법 내 간호 관련 내용을 분리해 간호사 및 전문간호사, 간호조무사의 업무 범위를 정하고, 간호사 등의 근무 환경·처우 개선에 대한 국가의 책무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간호법 제정안은 지난달 23일 국민의힘의 반대 속에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의 주도로 국회 본회의에 부의됐다.
법안을 두고 간호협회는 초고령 사회와 미래 감염병에 대비해 국민의 건강과 환자의 안전을 확보하려면 간호법이 제정돼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반면, 대한의사협회 등 다른 보건의료단체들은 간호법이 특정 직역만을 위한 중복·과잉 입법일 뿐 아니라 다른 보건의료직역의 업무를 과도하게 침해한다며 반대했다. 또한, 향후 간호사의 '단독 개원', 즉 독립적인 의료 행위를 가능케 하는 법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국민의힘과 정부는 11일 민당정 간담회를 통해 중재안을 제시했지만, 간호협회 측은 이를 거부하고 원안 통과를 요구하고 있어 향후 논의에 있어서도 난항이 예상된다. 앞서 당정이 중재안에는 간호법 제정안의 명칭을 '간호사 처우 등에 관한 법률'로 변경해 추진하고,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업무 관련 사항은 기존 의료법에 존치하는 내용이 담겼다.
아울러 중재안은 법안 제1조(목적) 조항의 '모든 국민이 의료기관과 지역사회에서 수준 높은 간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간호에 관해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다'는 내용에서 '지역사회' 문구를 삭제했다. 이는 간호사가 의사의 지도 없이도 지역사회에서 단독으로 개원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문구라는 의사협회의 지적에 따른 것이다. 이같은 중재안에 대한의사협회 등 13개 의료 단체로 구성된 보건의료연대는 수용 의사를 밝혔지만, 간호협회는 "일방적으로 결정된 사항을 통보했다"며 '수용 불가' 방침을 내놨다.
간호법이 앞서 양곡관리법 개정안처럼 더불어민주당의 주도로 강행 처리될 경우, 윤석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할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집권 이후 처음으로 거부권을 행사했지만, 간호법 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 여부는 정해진 바 없다.
한편, 대한의사협회와 대한간호조무사협회 등 13개 보건의료단체로 구성된 '보건복지의료연대'는 간호법 제정안과 중범죄 의료인의 면허를 취소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면 공동총파업을 논의하겠다고 예고한 상태여서 갈등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