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크레디트스위스(CS) 사태 등 각종 변수 속에서 물가와 금융안정, 미국과의 금리차 등 뭐 하나 놓쳐서 되는 게 없는 탓이다. 국내외 다양한 변수들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한은의 기준금리 향방도 바뀔 것으로 보인다.
20일 한국은행과 통계청 등에 따르면 이번 주부터 내달 기준금리 결정의 판단 근거가 될 발표가 속속 이어질 예정이다.
21일엔 한은 '2월 생산자물가지수'가, 내달 4일엔 통계청의 3월 소비자물가 지수가 발표된다. 또 우리나라 시간으로 23일 새벽에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ㆍFed)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결과과 나오며, 같은 날 오전에는 한은에서 '금융안정상황' 보고서를 내놓는다.
시나리오별로 금통위원들의 기준금리 결정에도 큰 변화가 있을 전망이다. 먼저 미 연준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하거나 베이비스텝(0.25%포인트 인상)을 밟고, 우리나라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전달보다 크게 둔화할 경우다.
이 경우, 내달 11일 한은 금통위에서 기준금리 동결 결정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이창용 총재는 지난달 기준금리 동결 후 기자간담회에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월부터는 4%대로 낮아지고 올해 말에는 3% 초반으로 내려가는 경로를 생각하고 있는데, 이대로 가면 굳이 금리를 올려 긴축적으로 갈 필요가 없다”며 “우리가 생각하는 물가 경로로 가느냐를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미 2월 물가상승률이 4.8%로 10개월 만에 4%대로 내려온 데다, 3월에는 지난해 기저효과로 상승률이 더 낮아질 것으로 관측된다. 한은이 예측한 대로 가고 있다는 건 결국 금리를 다시 동결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게다가 연준이 빅스텝(0.5%포인트 인상)을 단행하지 않는다면, 한미 기준금리차 역시 지금 수준을 거의 유지할 수 있게 된다. 현재 한국 기준금리(3.50%)는 미국(4.50∼4.75%)보다 1.25포인트(p) 낮은 수준이다.
한은은 지난달 물가 경로의 불확실성과 부진한 경기 등을 고려해 주요국 가운데 가장 먼저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그러나 지난달 초 미국 노동지표 발표 후 연준 빅스텝 가능성이 커지며, 불과 2개월 안에 미국과의 기준금리 역전 폭이 사상 최대 수준인 2%p까지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 바 있다.
반대로 연준이 금융 불안이 어느 정도 해소됐다는 판단에서 빅스텝을 단행하고, 우리나라 소비자물가 상승률 둔화도 기대에 못 미칠 경우다. 이 경우, 한은 역시 기준금리를 다시 인상할 가능성이 커진다. 물가를 잡아야 하고, 미국과의 금리차도 좁혀야 한다는 방향성이 일치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금리를 동결하거나 베이비스텝을 밟았는데, 우리나라 소비자물가 경로가 예상에서 벗어나는 상황도 나올 수 있다. 한은이 물가를 최우선으로 보고 있는 만큼, 금리를 올려 물가를 잡고 미국과의 금리차도 더 좁힐 수 있는 '일석이조'의 상황이다.
다만 SVB 사태의 국내 확산 여부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한은이 추가 금리 인상에 나선다면 취약한 저축은행이나 카드사(여신전문금융회사) 등에서부터 유동성 부족이 나타나 은행 등 전체 금융기관을 흔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3일 '금융안정상황' 보고서의 주요 수치를 보고 금통위원들이 판단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빅스텝을 밟았지만, 우리나라 물가 경로가 예상에 부합하는 상황도 있을 수 있다. 금통위원들은 △미국과의 금리차로 인한 자본 유출과 환율 상승 위험 △과도한 긴축으로 인한 금융 안정 리스크를 위협 등 2가지 상황의 경중을 중점적으로 살필 것으로 전망된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최근 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서 4월 기준금리에 대해 "물가를 먼저 보지만, 부수적으로 금융안정과 환율 등도 고려한다"며 "오는 4월 회의까지 꽤 시간이 있기 때문에 여러 데이터를 보고 결정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