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코인의 배신, 혁신까지 때려잡진 말자

입력 2022-11-29 05:00 수정 2022-11-29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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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우 미래IT부장

월드컵 경기장에서 선수 못지않게 자주 카메라에 잡히는 게 백보드 광고판이다.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두 가지 특징을 보이는 듯싶다. 경기장 옆이나 골문 옆에 설치된 광고판은 완다·비보 등 중국업체들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리고 세계 15위 규모 가상자산거래소인 ‘크립토닷컴’이 등장했다. 세계적으로 유명 브랜드들이 장악한 월드컵 광고판에 신생 브랜드가 메인스폰서 자리를 꿰찬 것이다. 스포츠를 적극 활용해 가상자산이라는 브랜드 인지도와 신뢰도를 높이겠다는 전략에서다. 더구나 FTX 파산 사태와 함께 크립토닷컴도 고객의 돈을 계열사나 다른 거래소의 재무 상황을 부풀리는 데 이용한 ‘돌려막기’ 의혹에 휩싸였던 터라, 이번 월드컵을 반전의 기회로 삼은 듯 보였다.

그러나 가상자산 시장은 암운이 가시지 않고 있다. 해외이든, 국내 시장이든 혼돈에 빠졌다. 지난 5월 세계 시가총액 10위권에서 하루아침에 휴지조각이 된 ‘한국산 코인’ 테라·루나 사태와 지난달 세계 3위 가상화폐거래소 FTX 파산보호 신청에 이어 상장사 위메이드가 발행한 위믹스까지 불투명한 운영을 이유로 상장폐지라는 결말을 맞게됐다. 국내 5대 가상화폐 거래소(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고팍스) 연합체인 닥사(DAXA)가 24일 위믹스 상장폐지 이유로 밝힌 것은 △유통량 불일치 △잘못된 정보 제공 △소명이 미흡해 신뢰를 훼손했다는 게 핵심 내용이었다. 이번 사태는 위메이드가 사전에 밝힌 위믹스 유통량보다 30%가량 많은 양을 유통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게 발단이었다.

위믹스의 상폐 파장은 컸다. 위믹스 투자자 대부분이 국내 거래소를 이용하는 만큼, 피해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1년 전 2만9800원까지 치솟았던 위믹스는 상폐 발표 후 500원대로 폭락했다. 같은 날 발행사인 위메이드와 계열사 주가는 일제히 가격 제한 폭(30%)까지 급락했다. 한때 가상자산이 금 대체재로 부각되기도 했지만, 연이은 악재로 신뢰가 추락하고 있다. 앞서 위메이드는 2020년에도 공시 없이 위믹스 1억800만 개를 처분해 2271억 원을 현금화해 논란이 됐다. 때문에 가상자산 경제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일각에선 닥사의 결정이 “매우 불합리하고, 상당한 불법의 소지가 있다”고 비판한다. 닥사가 한국거래소 같은 공적 기능이 없는 시장기구라는 점에서다. 영리를 목적으로 가상자산의 매매를 중개하는 민간 사업자에 불과하는 의미다. 민간 사업자의 결정에 수많은 투자자들이 피해를 입게 되는 구조라는 점이다. 국내 가상자산 시장 규모는 55조 원, 이용자는 1525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올 상반기 기준으로 하루 평균 690만 명이 5조3000억 원의 거래 시장을 형성했다. 하지만 투자자들의 피해를 막을 제도적 장치는 없다.

미국 현지에서 FTX 몰락이 주는 충격파는 상당하다. 연일 FTX 창업자 샘 뱅크먼 프리드를 둘러싼 범죄 의혹이 외신을 타고 있다. FTX는 누군가 사줘야 가치가 올라가는 전형적인 ‘폰지 사기’에 가깝다. 자산 부풀리기와 고객 돈 유용은 전형적인 금융사기다. FTX는 ‘도덕적 해이’ 사람의 문제다. 모래성 위에 쌓아 올린 명성과 자산 가치는 한순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직감의 비관론으로 가득 찬 가상자산 시장에 낙관론을 주장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들이 희망을 걸고 있는 것은 가상자산 업계에 대한 ‘규제’ 움직임이다. FTX 사태 이후 세계적으로 가상자산 규제와 관련한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우리도 서둘러 투자자 보호장치를 마련하고 코인 발행, 운용 규제, 부당·불법 거래 감독 등 가상화폐 제도화 해법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시장 자체를 죽이는 무리한 규제는 후유증만 남길 수 있다. 블록체인 기술·사업군에서 고군분투하는 인력에 대한 존중은 반드시 필요하다. 윤석열 정부는 국정과제에서 가상자산 범죄는 엄단하되 ‘시장 성장환경 조성’을 약속했다. 범죄자 한 명 때려잡으려다, 혁신시장까지 없애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ac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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