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인플레이션 10년 2개월 만에 최고
기업체감경기는 18개월 만에 가장 낮아
경기침체 속 물가 상승을 의미하는 ‘스태그플레이션’ 공포가 현실화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전망하는 물가 상승률인 기대인플레이션율이 4%에 바짝 다가서며 10년 2개월 만에 최고치로 올라섰고, 소비 심리는 얼어붙었다. 교역조건은 14개월째 악화됐고, 기업체감경기 전망치 역시 18개월 만에 최저로 떨어졌다.
29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5월 무역지수 및 교역 조건’에 따르면 올해 5월 수입금액지수는 유가 상승 등의 영향으로 전년 동월 대비 32% 급등했다. 18개월 연속 상승이다.
수출금액지수 역시 상승했지만, 수입가격(24.3%)이 수출가격(11.1%)보다 크게 오르면서 5월 순상품교역조건지수는 85.33으로 전년 동월 대비 10.6% 하락했다. 14개월째 내림세다. 물건 하나를 수출하고 받은 돈으로 수입할 수 있는 물건은 0.85개에 불과하단 의미다.
교역 조건이 나빠지면 국민 실질소득이 줄고 경상수지가 악화할 수 있다. 이미 지난 4월 경상수지가 2년 만에 적자를 기록하면서 우리 경제 기초체력이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기대인플레이션도 치솟고 있다. 한은이 이날 발표한 ‘6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기대인플레이션율은 3.9%로 집계됐다. 2012년 4월(3.9%) 이후 10년 2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특히 0.6%포인트 상승 폭은 역대 최대치다.
기대인플레이션율은 주관적 전망이지만 실제 물가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중요한 경제지표다.
물가 상승 우려가 반영되면서 이달 소비자심리지수(96.4)는 1년 4개월 만에 처음으로 100 이하로 떨어졌다. 100 아래라는 건 그만큼 소비 심리가 비관적이라는 의미다.
소비자심리지수를 구성하는 6개 지수 모두 하락했는데, 지난달 상승했던 소비지출에 대한 전망도 부정적 시각이 더 많아졌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 ‘삼중고’에 기업 분위기도 얼어붙었다. 이날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매출액 기준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7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 전망치는 92.6포인트를 기록했다. 지난해 1월(91.7) 이후 1년 6개월 만에 최저 수준이다.
한편 인플레이션에 미국 소비가 흔들리면서 월가에서 경기침체를 경고하는 목소리가 더 커지고 있다. 소비지표 부진에 최근 반등을 노리던 뉴욕증시 3대 지수는 28일 일제히 급락했다. 치솟는 유가에 여름 휴가철을 맞은 여행 수요도 주춤하고 있다.
오건영 신한은행 WM컨설팅센터 부부장은 “미국과 한국을 비롯해 대부분 글로벌 국가들의 성장률 예상치는 빠르게 하향 조정되고 있고, 인플레이션은 빠르게 상향 조정되고 있다”라며 “이 속도가 더욱 가팔라지고, 이를 제어하지 못한다면 실제 스태그플레이션으로 향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