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창근 칼럼] 도미노 디폴트 위기, 한국 안전한가?

입력 2022-06-2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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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자이언트스텝’(한번에 기준금리를 0.75%p 인상)으로 신흥국들이 잇따라 부채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국제유가와 원자잿값 폭등의 압박을 받아온 데다, 급격한 미국 금리인상에 따른 달러 강세가 겹친 영향이다. 자본 탈출이 본격화하면서 일부 나라가 빚을 갚지 못하는 국가부도(디폴트) 상황에 직면하고, 신흥국들에 도미노처럼 확산되는 사태까지 우려된다.

스리랑카와 파키스탄, 이집트, 레바논은 이미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했다. 라오스가 아슬아슬하고, 아프리카의 가나·잠비아·에티오피아·모잠비크·세네갈·콩고가 위기 상태다. 중남미 아르헨티나·베네수엘라·에콰도르·엘살바도르 등도 심상치 않다. 2010년 재정위기를 겪었던 남유럽 그리스와 스페인의 불안 또한 커지고 있다.

미국 금리의 상승은 신흥국이 발작을 일으키는 위기의 방아쇠가 된다. 이미 투자자들이 위험국가 자산을 버리고 안전자산으로 회귀하면서 신흥국 국채금리 급등과 함께 자본이탈이 뚜렷하다. 돈의 생리다. 미국 금리가 오르면 신흥국 화폐가치가 떨어져 이들에 자금을 빌려줬거나 국채를 샀던 선진국 은행들이 돈을 빼낸다. 이머징마켓 주식에 투자한 국제자본도 마찬가지다.

Fed는 28년 전인 1994년 자이언트스텝을 단행했었다. 당시 물가 방어를 위해 금리를 3.0%에서 1년 만에 6.0%까지 급격히 끌어올렸다. 이는 멕시코와 남미 국가들이 외환위기로 IMF의 구제금융을 받는 ‘데킬라 쇼크’를 가져왔고, 1996∼97년 한국과 태국, 필리핀 등의 아시아 외환위기로 번졌다. 2000년 ‘닷컴 버블’ 붕괴, 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에도 미국이 금리를 대폭 올렸다.

Fed는 앞으로도 가파른 금리인상을 예고했다. 신흥국들의 돈 빌리기가 힘들어지고 달러가 급속히 빠져나갈 수밖에 없다. 이들의 연쇄부도가 현실화하고 있다. 한국은 안전한가? 우리는 과거 고통스러웠던 외환위기의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물론 지금 우리 경제체력을 신흥국들과, 또 그때와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몇 가지 문제는 심각하다. 1997년 한국의 외환위기는 국내총생산(GDP) 규모를 넘는 과도한 기업부채와 부실로 촉발됐다. 현재 기업부채도 GDP의 114.9%(1분기 말)이다. 가계부채는 그때 GDP의 46% 수준이었지만, 지금 1859조 원으로 104.5%로 치솟아 주요국 가운데 가장 높고 증가속도도 빠르다. 정부부채(국가채무) 또한 당시에는 GDP의 6%에 그쳤다. 하지만 지난 문재인 정부의 계속된 팽창 재정과 적자국채 발행으로 올해 50%를 넘는다. 우리가 외환위기를 빨리 극복한 것은, 견실한 가계와 재정을 바탕으로 170조 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할 수 있었던 덕분이다.

위기의 안전판은 외환보유액이다. 1997년 39억4000만 달러로 바닥났던 외환보유액은 현재(4월 말) 4477억1000만 달러다. 중국, 일본, 스위스 등에 이어 세계 9위 규모로 비교적 든든한 방파제다. 그럼에도 안심할 수 없다. 2008년 우리 외환보유액이 2600억 달러였지만 위기를 막을 수 없었다. 한국 경제는 무역의존도가 높고 자본시장이 거의 개방돼 있다. 외부 충격에 매우 취약한 구조다.

우리 외환보유액이 충분한지는 늘 논란거리다. 외환을 많이 쌓기만 한다고 좋은 건 아니다. 대부분 미국 국채인데, 그 금리가 상대적으로 낮아 다른 자산보다 손해인 까닭이다. 적정 외환보유액의 정답이 없지만 기준은 있다. IMF가 연간수출액과 시중통화량(M2), 유동외채, 외국인 증권투자잔액으로 계산해 권고한 한국의 적정 수준은 4540억∼6810억 달러다. 보다 엄격한 국제결제은행(BIS) 기준으로는 9300억 달러다. 지금 우리 외환보유액으로는 여전히 불안하다는 얘기다.

위기 때마다 한국에서 달러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지금 상황이 매우 좋지 않다. 주식시장 추락으로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 시사총액 비중이 최근 30% 수준까지 떨어졌다. 코로나19 직전인 2020년 2월에는 39.3%였다. 올 들어 외국인은 14조 원의 주식을 팔아치웠고, 5월까지 빠져나간 자금이 95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한국은행은 집계했다. 원·달러 환율까지 1300원 선으로 치솟고 있다. 우려스러운 흐름이다.

수출을 계속 늘리고 무역흑자를 유지하는 것 말고 한국 경제를 안정적으로 지탱할 다른 방도는 없다. 올해 수출 둔화세가 뚜렷하고, 에너지와 원자재 수입비용 부담이 커져 무역적자는 급증하고 있다. 5월까지 무역적자가 78억5000만 달러였고, 연말까지 2008년(133억 달러)보다 더 많은 147억 달러 적자가 예상된다. 일찍이 없었던 미증유의 퍼펙트스톰(perfect storm)이 몰아치는데 사방이 캄캄한 절벽이고 출구도 안 보인다. 한국 경제가 직면한 시련은 과거 외환위기보다 더 크고 깊을 수 있다.kunny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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