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중단을 결심한 영주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동네에서 먼 산부인과를 찾는다. 이어지는 장면들은 왠지 모를 기시감이 든다. 병원에서 태아의 심장 소리를 들은 영주는 오열하고, 현은 영주를 안아준다. 병원을 나선 영주는 현에게 “나 진짜 너만 믿고 직진한다”며 출산을 결심한다. 그런 두 사람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배경음악이 흐른다.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다.
‘우리들의 블루스’는 제주를 배경으로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룬 옴니버스 드라마다. 노희경 작가의 4년 만의 신작으로 최고 시청률 12.8%를 기록하며 순항 중이다.
질병관리청이 지난해 청소년 5만942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청소년건강행태조사’에 따르면 성관계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청소년은 전체의 5.4%였다. 해당 연령(만 13~18세) 주민등록 인구가 약 280만 명인 것을 감안하면, 실제 성관계 경험이 있는 청소년은 15만 명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성관계 시작 평균 연령은 지난해 기준 14.1세로 조사됐다. 2013년 조사 당시 12.8세였던 것에 비하면 다소 높아졌지만, 어른들의 인식과 현실의 괴리가 매우 크다는 걸 보여준다. 반면 성관계 경험자 중 피임을 실천한 경우는 65.5%에 불과했다. 성 경험이 있는 청소년의 3분의 1은 피임을 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낮은 피임 실천율은 10대의 임신과 출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통계청 인구동향조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아이를 출산한 10대는 918명이다. 이 중 15세 미만은 11명이다. 임신한 10대의 대부분이 임신 중단을 선택하는 것을 감안하면 임신을 경험한 청소년은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유네스코 ‘국제 성교육 지침서’는 5세부터 성교육을 받을 것을 권하고 있다. 세계 최초로 성교육을 의무화한 스웨덴은 만 4세부터 성교육을 시작한다. 중학교 때부터는 피임 교육을 진행하고 무료로 콘돔을 나눠준다. 독일 역시 성교육을 의무교육으로 지정하고 위생적인 자위 방법과 안전한 피임법 등을 교육하고 있다.
물론 드라마가 꼭 교육적이어야 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청소년의 성과 임신 소재를 다룰 때는 좀 더 신중했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사랑’으로 모든 문제를 이겨낼 수 있는 것처럼 연출하는 건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임신한 청소년들이 겪는 현실은 드라마처럼 낭만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청소년기 임신은 모체와 태아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신체 성장이 끝나지 않았을뿐더러 사회적 자립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10~19세의 임신은 20~24세의 임신에 비해 산모의 임신중독증, 산후기자궁내막염, 전신감염의 위험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20세 미만 산모는 25~29세 산모보다 저체중아나 미숙아를 출산할 확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2019년 헌법재판소는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국회의 보완 입법이 이뤄지지 않아 낙태죄는 지난해 1월 1일부로 효력을 잃었다. 임신중단은 더는 범죄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청소년들의 임신중단은 여전히 사각지대로 남아있다. 병원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영주처럼 임신중단 시기를 놓쳐 위험에 노출되기도 한다.
‘우리들의 블루스’는 결말까지 7회를 앞두고 있다. 영주와 현이 겪을 갈등이 더 남아있겠지만, 결국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이다. 드라마니까. 드라마에서는 이들이 출산과 육아 과정에서 경험할 어려움까지는 보여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는 청소년들에게 어떤 책임이 따를 수 있는지를 분명히 알려줄 필요가 있다. 청소년들의 성 문제에 대해 외면하는 것도, 이를 포장하는 것도 모두 어른들의 무책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