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총재는 이날 취임식에서 “우리 경제가 코로나 위기 이후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을지, 아니면 고령화와 생산성 저하 추세가 이어지면서 장기 저성장 국면으로 빠져들게 될지 예측하기 어려운 시기에 놓여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러면서 “과거와 같이 정부가 산업정책을 짜고 모두가 밤새워 일한다고 경제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라며 “이제는 민간 주도로 보다 창의적이고 질적인 성장을 도모해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소수의 산업과 국가로 집중된 수출과 공급망도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라며 “그 과정에서 고통이 수반되겠지만, 이를 감수하고 구조개혁을 통한 자원의 재배분 노력을 서둘러야 하겠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구조개혁 과정에서 반드시 나타날 소득 불평등과 양극화 심화 문제에도 주목했다. 그는 “지나친 양극화는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켜 우리의 성장잠재력을 훼손시킬 것이기에 이에 대한 해결도 필요하다”고 했다.
가계와 정부의 부채 급증에 대한 우려도 내비쳤다. 그는 “부채의 지속적인 확대가 자칫 거품 붕괴로 이어질 경우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한다는 점을 우리는 과거 경험으로부터 알고 있다”라며 “거시경제 안정을 추구하는 한국은행으로서 부채 문제 연착륙에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또 이 총재는 우리 경제가 장기 저성장의 늪에 빠지지 않기 위해선 통화정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 경제가 당면한 과제들을 해결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통화정책만으로는 안되며, 재정정책과 구조개혁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더불어 “우리 경제가 당면한 중장기적 도전을 생각해 보았을 때 우리의 책임이 통화정책의 테두리에만 머무를 수 없다”며 임직원들의 역할 확대도 당부했다.
그는 “경제여건이 어려워질수록 중앙은행의 역할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법”이라며 “통화·금융 정책을 넘어 당면한 문제를 연구해 우리 경제의 올바른 방향에 대해 해결책을 제시하는 데 힘을 보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이 총재는 외부와의 소통 등을 당부했다. 그는 “경제에 대한 정밀한 분석과 판단 자료를 더 많이 제공하고 커뮤니케이션 채널도 더 다양화해야 한다”고 했다. 또 정부를 비롯한 관련 기관의 전문가와도 더 많이 소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정부와의 소통이 중앙은행 독립성을 저해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소신도 밝혔다. 그는 “오히려 시대적 과제를 풀어나가기 위해 정부와 시장, 또 민간기관과 건설적 대화가 필요한 때”라며 “이를 통해 문제를 종합적으로 살펴보고 조화와 협력 속에 해결방안을 함께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직원들의 처우개선도 약속했다. 그는 “예산이나 제도 등 여러 제약으로 인해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겠지만, 하나둘씩 근무 여건을 개선하고 사기를 진작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자”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 총재는 "얼마 전 코로나19로 인해 건강상 큰 어려움을 겪은 바 있다. 한국은행 총재직은 제게 주어진 두 번째 삶을 의미 있게 사용할 소중한 기회라 생각한다”며 “한국은행이 한국경제를 전환점에서 올바른 길로 이끌었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자"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