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 없는 회사’ 금융지주가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두면서 최고경영자(CEO)의 장기 경영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고 있다.
1일 금융권 내부에서 “전문성과 경영능력을 입증한 CEO라면 금융지주의 장기 경영계획을 수립하고 이끌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전문성 없는 ‘나눠먹기식’ 인사로 금융지주의 경쟁력을 갉아먹는다”는 장기집권 폐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여전히 작지 않다.
그런데 최근 오너십 경영의 장점이 금융지주에 접목되면서 CEO 장기경영이 긍정적인 결과를 낼 수 있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주장에는 건전한 이사회에 기반을 둔 CEO의 투명 경영이 전제로 깔려 있다.
지난해 KB·신한·하나·우리 금융 등 4대 금융지주는 지난해 총 14조5000여억원의 순이익을 거뒀다. 이런 성적표에 대해 금융전문가들은 “금융지주의 취약부분으로 지적됐던 보험 증권 등 비은행 부분을 적극 공략한 결과”라고 풀이했다.
오너십 경영의 장점이 금융지주에 접목되면서 CEO 장기 경영이 긍정적인 결과를 낸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경영능력이 입증되면 임기에 얽매이지 않는 장기 플랜을 실현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금융지주 회장은 “금융이라는 영역은 분명히 전문성이 필요하고 장기적인 시각에서 경영을 이끌어가야 하는 곳”이라며 “하지만 정관계에서는 ‘한 사람이 좋은 자리를 독식하지 말고 돌아가면서 하자’는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CEO가 장기 경영을 하기 위해선 ‘조건’이 있다. 과거와 같은 CEO 장기 집권의 폐해 재발을 막기 위해선 건설적인 개입을 할 수 있는 이사회의 견제가 필요하다. 최근 확산하고 있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은 이사회의 역할을 강화하기에 좋은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실제로 이사회의 역할에 따라 금융회사의 존폐가 결정되기도 한다. 2008년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할 당시 이사회의 문제점이 발견됐다. 리먼의 내부를 고발한 ‘상식의 실패’에서는 리먼의 이사회에 대해 “거친 시장에 대한 의미 있고 명료한 지혜를 제공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아는 리처드 폴드 회장의 투자계획을 인정해주고 결정을 승낙해주기 위해 존재했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반면, 은행 경영에 실질적인 ‘최고 결정기구’로 역할 하고 있는 유럽 산탄데르 은행 이사회는 리스크위원회만 연 100회를 열고 경영진 계획에 반하는 의사결정도 내리며 다양한 위기에도 은행을 존립할 수 있게 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무조건 CEO가 장기 경영을 하자는 게 아니라 금융회사도 10년짜리 장기 경영이 필요한 기업인 만큼 이사회에 기반을 둔 장기 투명경영을 장려하는 분위기가 분명히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