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환경ㆍ사회ㆍ지배구조)에 경영에 대한 요구가 갈수록 커지는 것은 이제 단순한 외형적 성장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성장이 기업의 성장과 주주 이익과 직결된다는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런 ESG 주도권을 이끄는 곳은 유럽이다. 최근에는 기업에 ESG 경영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법으로 제도화하려는 움직임도 시작했다. 2017년 프랑스에서 제정된 ‘인권실사법’과 2019년 제정된 네덜란드의 ‘아동노동 실사법’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6월 독일 의회에서 통과돼 내년 1월 시행을 앞둔 ‘공급망 실사법’도 사정은 마찬가지. 지금까지 제정된 ESG 관련 법 가운데 가장 강력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독일의 공급망 실사법에 따르면 독일 기업은 앞으로 사업 영역과 직ㆍ간접적인 연관이 있는 공급업체들의 △인권이나 △토양ㆍ수질오염 등 환경 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리스크를 관리해야 한다.
기업들의 의무 내용은 △법 적용 대상 기업 모두에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의무 △인권 및 환경권 침해 리스크가 확인된 경우 △인권 및 환경권 침해가 발생한 경우 등 세 단계로 나뉜다.
이를 위반할 경우 규제 당국은 여러 시정 조처를 내릴 수 있다. 위반 사항의 중대성과 회사의 피해 구제 노력 등을 고려해 매출액 기준에 따른 행정제재금을 부과할 수도 있다. 그 밖에 독일의 노동조합이나 시민단체가 피해자 대신 소송을 제기하는 등 간접적인 리스크도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적용 대상은 독일에 주된 소재지를 두고 3000명 이상의 근로자를 상시 고용하는 기업이다. 다만 법 시행 1년 뒤에는 근로자 1000명 이상인 기업까지 확대될 예정이다.
공급망 실사법이 독일부터 시작해 유럽, 더 나아가 전 세계적으로 퍼진다면 국내 수출 기업들 모두가 직접적인 영향권에 들어가게 된다. 특히 무역의존도가 75%로 세계 최고 수준인 우리나라에는 더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재 ESG에 대해 별다른 준비를 하지 않고 있는 기업들이 태반이다. 특히 대기업과 중견ㆍ중소기업 간의 양극화가 점점 두드러지고 있다.
삼성, 현대, SK 등 대기업들은 막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일찌감치 ESG 경영 체계를 준비해왔다. ESG에 대응하는 인력을 수십 명으로 늘리고 ESG 자문사들과 매년 수억 원대의 계약을 맺는 식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ESG 리포트 발간 자체만 봐도 평균 2~3억 원의 비용이 들어간다”며 “대기업이니까 감당 가능한 수준”이라고 귀띔했다.
이와 달리 중소ㆍ중견 기업들은 ESG 개념조차 모르는 경우도 많은 실정이다. 중요성을 인지하는 기업이라도 ESG가 당장 수익성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기 때문에 손 놓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근 상장사협회가 상장사 797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88.6%가 ESG 규제에 부담을 느낀다고 응답했다. 특히 5000억 미만의 상장사 10곳 중 8곳은 ESG 관련 부서조차 없는 상황이다.
한 자문사 관계자는 “중소ㆍ중견 기업을 만나보면 ESG라는 개념조차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라며 “나중에 필요하면 직원 한 명 채용해서 대응하면 된다는 식의 안일한 생각을 하는 사장들도 부지기수”라고 설명했다.
더 나아가 앞으로 공급망 전체에 대한 ESG 평가 기조가 확산하면 대기업들마저 녹록지 않은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거래 관계에 있는 모든 공급망 업체들의 위치, 사업 및 근로자의 특성, 구체적인 연락처 등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고 공급사들의 리스크 평가까지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 대기업 ESG 관계자는 “현재 공급사들의 ESG 현황은 그때그때 일일이 파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대안이 필요하다”며 “앞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호 협력이 중요할 텐데 정부에서 적극적인 지원을 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