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시중은행의 지난해 대손충당금 잔액이 증가하며 손실 흡수 능력이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코로나19 대응 금융지원으로 부실채권의 규모가 정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착시효과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은행권의 대손충당금은 ‘숨은 지뢰’를 피하기엔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7일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의 작년 말 대손충당금 잔액은 7조45억 원으로 전년(6조8592억 원)보다 소폭 늘어났다.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의 대손충당금 잔액은 줄어들었으나, 국민은행과 하나은행, 농협은행의 대손충당금 잔액이 크게 늘어나며 은행권 전체적으로는 대손충당금 잔액이 상승한 것이다.
대손충당금은 매출채권 중 회수가 어려울 것으로 추정되는 금액을 비용으로 처리해 돈을 회수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하는 계정이다.
대손충당금 잔액이 줄어든 은행들은 부실채권 매각·상각하면서 대손충당금을 사용하며 잔액이 줄었으나 건전성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또, 부실채권 자체가 줄어들고 연체율도 낮아지는 등 건전성 지표에 위험 신호가 감지되지 않으므로 현재 충당금 수준으로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 은행의 대손충당금적립률은 코로나19가 발생한 2020년 3월 말의 110.6%에서 2021년 9월 말 156.7%로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수치 자체로는 건전성은 양호하게 관리되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난해 부실 자산을 매각, 상각하면서 쌓아둔 대손충당금에서 사용하며 잔액이 줄었다”라며 “대손충당금 잔액이 감소했더라도 은행들이 대손충당금 전입액을 늘리고 있다는 점을 잘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건전성에는 문제가 없다”며 “앞으로 부실 가능성에 추가로 대응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건전성을 판단하는 지표 자체를 신뢰할 수 없어 은행의 손실 흡수 능력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중소기업·소상공인에 대한 대출 만기 연장·이자 유예 등의 코로나19 금융 조치가 이어지고 있어 부실 규모를 가늠하기 힘든 상황에 처해있지만, 은행의 손실 흡수 능력은 당장 현실화된 부실채권을 기준으로 산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은행권이 현재 대손충당금으로는 드러나지 않은 부실을 피하기엔 역부족인 만큼 더욱 대손충당금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순호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금융당국은 은행이 팬데믹 상황에서 예상손실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는지 점검해 보고, 미흡한 부분에 대해 적극적으로 개선요구를 할 필요가 있다”라며 “긴급히 은행의 위기 대응력을 제고할 수 있도록 특별대손충당금 및 대손준비금 적립 등을 유도할 수 있는 정책수단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