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언제나 변함없이 제 속도로 가는데 우리에게는 왜 그렇게 빠른지, 그 세월의 빠름이 야속할 뿐이다. 나만의 일인지 모르겠으나 언제부턴가 나이가 든다는 것이 슬슬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한 해 한 해 거듭하며 쌓이는 ‘나이’라는 겹이 그 사람에게는 연륜이고 노련미이고 재산인 것을, 오히려 ‘나이’라는 숫자 앞에서는 주눅이 드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젊음과 패기가 퇴색해 버린 탓일까?
상담을 하다 보면 종종 ‘나이에 주눅 든’ 고민남녀를 만나게 된다. 퇴직으로, 이런저런 사정으로 실직을 했거나 일이 잘 풀리지 않은 상황에 놓여 있을 때일수록, 또 경력이 단절된 상태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자 할 때 등등 나이가 ‘힘’이 아닌 ‘짐’이 되는 경험을 해본 사람일수록 이 주눅의 크기는 더 커진다.
얼마 전 상담을 진행한 50대 후반의 고민녀도 ‘나이’라는 놈 때문에 자신감도 없어지고 자존감도 낮아져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나이가 많다 보니 업무 배정에서도 불이익을 받고 있다고 그녀는 말한다. 생계유지를 위해 뒤늦게 취업을 했지만 60이 코앞, 퇴직을 대비해야 하는 처지이다 보니 막막함에 걱정도 되고 우울감도 높아질 것이다. 이 고민녀는 당장 먹고살아야 할 일이 현실이기에 자신의 일을 할 수 있는 건강, 일하겠다는 의지를 꺾어버린 ‘나이’라는 놈이 원망스러울 것이다.
100세 시대가 되고 시니어 취업 일자리가 늘어나고 있다고는 하지만 사실 자세히 들여다보면 60이라는 숫자로 취업 여부를 가리고, 일을 할 수 있다 해도 능력과 경력은 무시되기 일쑤이고, 수요에 비해 일자리는 제한적이다. 그러다 보니 애초부터 취업을 포기하거나 일을 할 수 없다는 좌절감을 느껴야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인생은 60부터라는 말도 있지만 60이라는 숫자를 뛰어넘기에는 현실의 벽이 너무 높다. 젊음과 외모가 중시되는 사회에서 늙음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사실 60대의 나는 20대, 40대의 나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다르지 않은가.
그러나 그렇다고 우리 ‘나이’라는 숫자에 주눅 들지 말자. 우리가 가야 할 길이 하나의 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인생의 연륜과 원숙미가 있지 않은가. 그 유연함으로 포기하지 말고 뜻을 펼치면 길은 만들어지고 새로운 인생이 시작될 것이다. 인생의 황금기는 20대도, 40대도 아닌 바로 지금, 내가 사는 이 순간이다. ‘나이’라는 숫자에 주눅 들지 말자.
김현주 서울 강서구보건소 사회복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