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중국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정부 사절단을 보내지 않는 ‘외교적 보이콧’을 공식화 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또 한 번 기로에 서게 됐다. 미국과 중국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바이든 행정부의 압박을 피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대북관계 돌파구를 마련하려던 구상은 차질이 불가피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외교적 보이콧’은 선수단은 파견하되 정부 공식 사절단은 보내지 않겠다는 의미다. 통상 올림픽에는 각국의 정상급을 포함해 대규모 외교 사절단이 참석하는 외교 무대가 열린다. 2008년 베이징 하계올림픽 당시에도 역대 최대 규모의 외국 정상들이 중국을 방문했다. 당시 하계올림픽을 통해 ‘신흥 강국’의 이미지를 공고히 했던 중국은 이번 동계올림픽에서 ‘강대국’의 위치를 확인하겠다는 야심이 엿보인다.
하지만 중국의 도전에 미국이 초강수로 맞서면서 둘 사이에 끼인 상황이 된 우리 정부는 난감한 처지가 됐다. 미·중 양국 사이에서 균형외교를 추구한다는 이른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와 여당인 민주당은 이미 한국 등 동맹국에 베이징 올림픽 외교적 보이콧 동참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미 의회의 실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로버트 메넨데즈 상원 외교위원장은 외교적 보이콧이 발표되던 6일(현지시간) “이번 결정은 중국 정부의 부도덕한 탄압에 맞서 우리의 흔들림 없는 인권 다짐을 보여주는 불가피한 조처이고, 다른 동맹국들과 파트너 국가들도 미국과 함께 외교적 보이콧에 동참하기를 희망한다”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앞서 지난달 앤서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도 뉴욕타임스(NYT)와 인터뷰에서 “미국이 동맹국들과 올림픽 참가 문제를 어떻게 할지 협의하고 있으며 활발한 대화가 이뤄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사실상 한국을 포함한 동맹국에 보조 맞춰달라고 요구했다는 사실을 인정한 셈이다.
영국, 캐나다, 호주 등 미국의 전통 우방국들은 외교적 보이콧 동참을 검토하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 국가가 미국과 함께한다는 뜻을 밝힌다면 한국은 상당한 부담을 안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분수령은 오는 9일이 될 전망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오는 9~10일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약 110개 국가 정상들이 화상으로 참여하는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연다. 이 회의는 글로벌 연대 체제 구축으로 중국 등을 견제하기 위해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직후부터 공을 들여 온 행사다. 이 자리에서 미국은 어떤 식으로든 한국 등 동맹국에게 베이징 동계올림픽 외교적 보이콧 동참을 압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청와대는 말을 아끼는 중이다. 청와대측은 "베이징올림픽이 세계평화와 한반도평화에 도움이 되는 평화올림픽이 되고 성공한 올림픽이 되길 바란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반복할 뿐 외교적 보이콧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