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아닌 법인이 대규모 매입 나서기도
기업 고위층의 연말 자사주 쇼핑이 한창이다. 대표적인 주주환원 정책으로 꼽히는 자사주 매입은 일반적으로 책임경영 의지를 드러내는 것으로 풀이되는데, 특정 이벤트를 앞둔 상황에선 추가적인 의미를 내포하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나아가 개인이 아닌 법인이 대규모 자사주 매입에 나서기도 하고, 다른 한쪽에선 오너 일가가 자사 주식을 팔아치우며 다양한 해석을 낳고 있다.
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은 자사주 매입을 통해 완전 민영화 성공에 따른 새로운 도약 의지를 표명했다.
손 회장은 자사주 5000주를 장내 매입해 총 10만3127주의 우리금융지주 주식을 보유하게 됐다고 전날 밝혔다. 그는 2018년 3월 이후 중요 시기마다 자사주를 사들이며 우리금융그룹 기업 가치 제고 의지를 드러내 왔다.
이번 자사주 매입 시기 또한 유의미하다는 분석이다. 우리금융지주는 9일 예금보험공사 잔여지분 매각 본계약을 앞두고 있다. 이로써 우리금융지주는 1998년 구(舊) 한일ㆍ상업은행에 공적자금이 투입된 지 23년만에 완전 민영화에 성공하게 된다.
자사주 매입을 통해 손 회장은 올해 실적 턴어라운드를 기반으로 완전 민영화 원년인 내년에도 호실적을 이어가 새로운 도약을 이루겠다는 의지를 대내외에 드러낸 것이다.
강성수 한화손해보험 대표도 지난달 22일과 23일 이틀에 걸쳐 자사주 2만주를 사들였다. 지난해 6월 기준 보유 중이었던 자사주 10만 주에 이를 더해 강 대표가 보유한 한화손해보험 주식은 12만 주가 됐다.
강 대표의 자사주 매입은 '책임 경영' 그 이상의 자신감을 뜻한다는 해석이 힘을 얻는다. 강 대표는 지난해 초 적자에 신음하던 한화손해보험에 구원투수로 등판해 비상경영 체제를 선포, 흑자전환을 이뤄낸 인물이다.
따라서 자사주 매입은 주가와 실적 상승의 여력이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추가로 그의 임기가 내년 3월 종료된다는 점에서 자사주 매입이 연임의 시그널이라는 분석도 있다.
대표뿐 아니라 임원들도 자사주 매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SKT가 지난달 투자전문회사로 SK스퀘어를 인적분할하고 29일 재상장한 이후 이달 6일까지 SK스퀘어 임원이 매입한 회사의 주식 수는 총 9103주다.
매수 시점별로 가격 차이가 있지만, 7일 시가(6만6800원)으로 계산하면 임원들은 6억 원가량의 자사주를 사들인 것으로 파악된다. "회사 주가 상승에 대한 자신감"이라는 게 SK스퀘어의 설명이다.
내부 고위직뿐만 아니라 법인이 아예 대규모 자사주 매입에 나서는 움직임도 포착된다. 현대차는 지난달 주식 발행총수의 1%에 해당하는 총 276만9388주(보통주+우선주)를 내년 2월 18일까지 매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매입 규모는 5000억 원 수준이다.
현대차는 취득 목적을 “자기주식 취득을 통한 주주가치 제고”라고 설명했다. 현대차가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자사주를 매입한 것은 2019년 12월 3000억 원 규모를 매입한 이후 23개월 만의 일이다.
한편, 오너 일가가 자사 주식을 처분하며 이목을 끄는 곳도 있다.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대표이사는 6일 보유하고 있던 롯데쇼핑, 롯데칠성 보통주를 전량 매도했다. 세금 납부 재원 마련을 위해 지분 매각이 이뤄진 것으로 전해진다. 신 대표는 지난해 7월 말 아버지 고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이 남긴 롯데쇼핑 지분 0.24%, 롯데칠성 지분 0.33%를 상속받았다. 그는 동생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그룹 경영권을 놓고 다툼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 지분 매각으로 신동주 대표의 한국 롯데에서의 입지가 더 줄어들 것이란 분석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