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파운드리 공장 투자 확정으로 대미 장식
가석방 3개월만 광폭 행보에 삼성 활력 충전
이재용 부회장 “비즈니스 파트너들과 미래 이야기 나눠”
"냉혹한 현실 보고 오니 마음이 무겁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가석방된 지 3개월 만에 멈춰 섰던 삼성 투자 시계가 재가동을 시작했다. 5년 만에 떠난 이 부회장의 북미 출장은 이를 가속하는 계기가 됐다. 반년 동안 결론이 나지 않았던 미국 신규 파운드리 투자 결정을 열흘 만에 이끌어냈고, 바이오와 5G(5세대 이동통신), 인공지능(AI) 등 삼성의 미래를 이끌 사업의 청사진도 뚜렷해졌다.
이재용 부회장은 24일 오후 열흘간의 북미 출장을 마치고 서울 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를 통해 귀국했다. 이 부회장은 향후 사업 전망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시장의 냉혹한 현실을 직접 보고 오게 되니 마음이 무겁다”라고 답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 글로벌 무역환경 급변, 매서운 경쟁사 추격 등 산업 환경을 둘러싼 불확실성을 의식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이번 출장 성과에 대해선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오래된 비즈니스 파트너들을 만나 회포를 풀었고, 미래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어 좋은 출장이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의 미국 출장 일정은 신규 파운드리 라인 입지를 테일러 시로 확정 짓는 것으로 대미를 장식했다. 5월 한미정상회담 시기 신규 파운드리 공장 건설을 결정한 지 반년만이다. 이날 오전엔 미국 텍사스 주지사 관저에선 투자 확정 소식을 알리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김기남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 그렉 애벗(Greg Abbott) 텍사스 주지사, 존 코닌(John Cornyn) 상원의원 등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테일러 시 신규 공장은 2022년 상반기에 착공해 2024년 하반기 가동이 목표다. 삼성전자가 미국에 신규 반도체 공장을 짓는 건 1996년 오스틴 시에 첫 파운드리 공장 설립 이후 약 25년 만이다. 예상 투자 규모는 170억 달러(약 20조 원)에 달해 해외 단일 반도체 공장 투자 중에선 역대 최대다.
기존 오스틴 생산설비와 시너지를 낼 수 있고, 안정적인 인프라를 갖췄다는 점이 최대 장점으로 꼽힌다. 근처엔 글로벌 IT 기업과 유수 대학이 즐비해 고객과 인재 확보에도 유리하다. 지방정부로부터 1조 원을 넘어서는 세금 혜택 조건도 끌어냈다.
이번에 들어서는 신규 파운드리 공장은 2022년 완공되는 평택 3라인과 함께 삼성 시스템 반도체 핵심 기지 역할을 하게 된다. 생산 품목은 첨단 공정을 적용한 5G, HPC(High Performance Computing), AI(인공지능)용 시스템 반도체다. 업계에선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신기술인 게이트올어라운드(GAA)를 기반으로 한 3나노미터(㎚ㆍ1㎚=10억 분의 1m) 제품 양산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
미국 백악관과 지방정부도 환영의 뜻을 내비쳤다. 백악관은 이날 성명을 내고 “삼성이 텍사스에 새로운 반도체 시설을 건설해 공급망 보호 지원 및 양질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것이라는 발표를 환영한다”라고 밝혔다. 애벗 주지사도 “삼성전자의 신규 테일러 반도체 생산시설은 텍사스 중부 주민에게 수많은 기회를 제공하고, 텍사스 반도체산업 경쟁력을 이어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
재계에선 이번 파운드리 투자가 초격차를 넘어 가보지 않은 미래를 개척하는 ‘뉴삼성’ 비전 그리기 신호탄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인수ㆍ합병(M&A), 조직 개편, 인사 쇄신 등을 통한 삼성의 변화와 새로운 도약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