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상속세 논의 주장 반박 차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14년 말 골드만삭스 고위 임원을 만나 삼성의 핵심 사업 전략에 대한 깊은 고민을 토로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골드만삭스가 이재용 부회장을 만난 것은 승계 관련 자문이 아닌, 사업전략 등을 논의하기 위한 목적이었다는 변호인 측이 증거를 제시하면서 관련 내용이 알려졌다.
12일 재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에서 전날 열린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부정 혐의 재판에서는 한 통의 영문 이메일이 공개됐다.
변호인 측이 증거로 제시한 이 이메일은 2014년 12월 8일 미국 골드만삭스의 진 사이크스 당시 M&A 사업부 공동회장이 이날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정현진 골드만삭스 한국 대표 등 3명에게 보낸 것이다.
이메일에는 사이크스가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직후 홀로서기에 나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나눈 대화 내용이 나온다. 이 부회장의 고민과 경영철학, 사업구상 등을 엿볼 수 있다.
사이크스는 글로벌투자은행(IB)업계에서 IT, 이동통신 등 분야 전문가로 알려진 인사로, 미국 애플과 스티브 잡스를 전담했던 뱅커로 유명하다. 이 부회장을 알게 된 것도 잡스의 소개 덕분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이크스는 정 대표 등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제이(Jay·이재용 부회장)가 오늘 저를 만나러 왔다'면서 대화 내용을 구체적으로 전달했다.
그는 이 부회장과의 대화 가운데 대부분은 삼성전자 사업 전반에 관한 것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고성능 부품, 디스플레이, 폼팩터, 카메라 기술 등 하드웨어 측면에서의 제품 차별화, 시스템 반도체와 파운드리 등 비메모리 사업 전략, 소프트웨어 분야의 투자 확대 등을 논의했다고 전했다. 당시 껄끄러웠던 애플과의 지속적인 공급 관계 등에 대해서도 집중적으로 논의했다고 설명했다.
이 부회장의 이런 구상은 최근 갤럭시 폴더블폰 성공, 시스템반도체 비전 2030 선언,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 등 소프트웨어 발전 전략, 애플에 대한 핵심부품 공급 등 구체적인 성과로 이어졌다.
이 부회장은 사이크스와 면담에서 이른바 '선택과 집중' 경영전략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당시 추진하던 방산, 화학 분야 등 비핵심 사업 정리를 언급한 뒤 "이를 위해 열심히 노력한 것 때문에 한국 정치인들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별로 인기가 없다고 한다"면서도 "핵심 사업에 집중하는 접근 방식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이어 "주주들과 다른 사람들도 (핵심 사업 집중을 통해) 소유 구조를 더욱 투명하게 하려는 우리들의 노력을 결국 인정해줄 것"이라도 했다.
이 부회장은 당시 상속세와 관련한 문제도 언급했다. 사이크스는 "그는 비록 한국 상속세와 미국 세금의 차이점에 흥미를 보이기는 했지만, 부친께서 돌아가실 경우 발생할 세금 문제에 대처할 준비가 잘 돼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 부회장 측 변호인이 이 이메일을 공개한 것은 이 부회장이 골드만삭스 측 인사들과 만난 이유가 검찰의 주장대로 경영권 승계나 지배구조 개편을 위해서가 아니라 전반적인 사업 현안과 미래 전략에 대한 조언을 받기 위한 차원이었다는 것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다.
삼성 측은 "사이크스의 이메일 내용을 볼 때 상속세 마련을 위한 삼성생명 지분 매각 논의를 목적으로 골드만삭스와 잇따라 접촉했다는 검찰 공소장 내용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