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효율적 재정운용 통해 조세 저항 줄여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한 확장적 재정기조로 내년 국가채무 1000조 원 돌파가 확실시되는 가운데, 세수를 확보하고 악화한 재정건전성을 개선하기 위해선 증세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조세재정연구원(조세연)이 28일 발간한 '재정포럼 10월호'에 따르면, 윤성주 조세연 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우리나라는 인구·사회구조 변화를 고려할 때, 머지않은 미래에 증세가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며 "증세 과정에서 제기될 수 있는 조세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효율적인 재정운용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처럼 전문가 및 연구기관에서 증세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정작 정부나 정치권에서의 논의는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5일 국정감사에서 증세가 불가피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 "증세 문제는 별도로 국민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는 절차가 필요하다"며 "정부는 인위적인 증세를 목적으로 한 세목변경이나 신설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기재부에 따르면, 정부는 내년 예산안 규모를 올해 본예산 558조 원보다 8.3% 증가한 604조4000억 원 규모로 편성했다. 현 정부 들어 2019년(9.5%), 2020년(9.1%), 2021년(8.9%), 그리고 내년까지 4년 연속으로 확장 재정 기조를 이어가는 셈이다.
이에 따라 빠르게 커진 국가채무는 내년 1068조3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정부 출범 당시인 2017년 660조2000억 원이었던 나랏빚이 5년 새 408조1000억 원이나 증가하는 것이다.
국가부채가 늘어나면 정부의 재정운용에 부담이 갈 수밖에 없고, 경제 성장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실제로 국가부채가 단기적으로는 경제 성장에 긍정적인 효과를 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더 큰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김성순 단국대 명예교수는 29∼30일 열리는 재정학회 추계 정기학술대회에서 발표할 예정인 '국가부채가 경제성장에 미치는 효과 분석' 논문에서 "국가부채는 단기적으로는 성장에 긍정적일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가장 큰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한다"며 "국가부채는 경제 성장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정책적 요소로 민감하게 고려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정부는 늘어난 세수를 통해 국가채무를 상환하고 재정건전성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이다. 실제로 올해 초과 세수는 정부가 예상한 31조6000억 원보다 최대 10조 원 이상 많을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계속해서 확장적 재정 기조를 유지하는 만큼 나랏빚은 크게 줄어들지 않을 전망이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국가채무비율은 올해 47.3%에서 내년 50.2%로 늘었으며, 2025년엔 58.8%로 치솟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과 달리 미국 등 주요 국가들은 코로나19 관련 정부 지출을 줄이며 내년도 예산 삭감에 나서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은 재정 준칙을 법제화한 주요 국가와 한국의 내년도 예산안을 분석한 결과, 미국과 독일, 프랑스 등이 내년 예산 규모를 올해 결산 추정액 대비 평균 14.8% 축소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28일 밝혔다. 반면 우리나라의 내년도 예산안 규모는 올해 결산 추정액 대비 0.1% 줄어드는 데 그쳤다.
한경연은 "주요 국가들이 내년부터 코로나19 관련 지출을 축소하며 예산 감축에 나서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기초연금과 아동수당 등 복지 분야 지출을 늘리고 있어 국가 재정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확장재정에 따라 적자 예산이 계속되고 있어 증세 논의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빠르게 늘어나는 국가채무를 관리하고, 복지 수요 확대에 따른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결국 증세를 통해 세수를 늘리는 게 유일한 해법이라는 것이다.
신관호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 부채 추이로 봐서는 증세가 필요하다"며 "앞으로 고령화 등에 따른 복지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정부 지출이 증가하는 등 재정 적자 요인들이 많은데 증세하지 않으면 정부 부채 규모는 계속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세수 증대를 위해선 부가가치세 등 증세 대상을 폭넓은 계층에게 두루 넓히는 '보편 증세'를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고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부자 증세는 큰 효과가 없고, 모든 사람에게 세금을 걷을 수 있는 부가가치세 증세가 필요하다"면서도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세금을 매기다 보니 조세 저항이 심하지만 감수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재정 건전성 회복을 위해 증세가 불가피하지만, 재정의 효율적 운용이 급선무라는 지적도 나왔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명예 교수는 "재정 적자 상황에서 재정 건전성 회복을 위해서는 세금을 더 거둬야 한다"면서도 "정부가 세금을 너무 낭비하고 있기 때문에 효율성을 높이는 게 급선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