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측 "공문 아닌 협조요청, 가끔씩 이렇게 내보낸다"해명
금융감독원이 가상자산 거래소들을 관리·감독하는 과정에서 공식적인 절차를 밟지 않고 관련 정보를 취합한 것으로 드러났다. 금감원은 그간 가상자산 거래소의 폐업과 관련된 민감한 내용을 비롯해 일일·주간 동향 보고를 받아 왔다. 거래소에서 발생하는 코인 거래량, 이용자 규모 등을 수시로 파악하기 위함이다.
이 과정에서 금감원이 발송한 문서에는 공식적인 공문임을 입증하는 직인이나 기관장 명의가 생략되고 관련 내용만 적시된 채 업체에 전달됐다. 기관 직인이나 기관장 명의가 빠진 문서는 비공식적인 절차를 밟은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향후 관련 내용에 마찰이 빚어질 경우 감독기관의 책임 소재가 불명확해지는 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6일 이투데이 취재결과, 지난 6월 시장점유율 1위 거래소인 업비트가 약 32개의 코인을 상장폐지(지원종료)하자, 금감원은 자료와 협조요청 등 수시로 관련 공문을 업체에 전달했다. 언론에 노출된 거래소의 특이사항 등 코인 상폐에 따른 시장의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함이다. 전달 방식은 대부분 유선을 통하거나 이메일 등으로 의사 전달이 이뤄졌다.
특히 일부는 단순 업무협조 요청이 아닌 가상자산 거래소의 폐업과 관련된 민감한 내용도 포함됐다. 예컨대 금감원은 지난달 19일자로 가상자산 거래소에 ‘가상자산취급업소의 신고 업무 관련 협조사항’이라는 문서를 발송했다. 원화마켓 종료 및 폐업 등을 앞두고 있는 거래소에 이용자 지원 절차 권고안을 안내하고, 내규에 반영하라는 지시였다. ‘같은달 30일까지 반영 결과를 회신해야한다’는 문구도 명시됐다. 그러나 해당 문서에는 금감원 소속 담당자의 이름이 기재돼 있으나, 공식적인 문서임을 입증하는 직인이나 기관장 명의는 생략됐다.
한 고위공무원 출신 관계자는 “행정기관 내부적으로는 업무연락이라고 해 직인이 필요없지만, 외부로 나가는 문서에는 전자결재를 통해 직인을 찍고 보내야 한다”며 “부득이하게 직인을 생략한다 치더라도 기관장 명의로 발송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업계 관계자는 “직인이나 기관장 명의가 삭제된 것이 문제가 된다는 것을 몰랐다”며 “지속적으로 거래소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고, 폐업 절차에 대한 얘기가 나오다 보니 납작 엎드려야 한다고 않겠나”라고 말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공문 형태보다는 일반적으로 관련 절차를 준수해 달라는 당부였기 때문에 이메일로 발송했다”면서 “금감원은 금융회사들과 연결고리가 있기 때문에 간단한 사항에 대해서는 가끔씩 (이런 식으로) 나가고 있는 것은 맞다”고 해명했다.
금감원은 협조 사항이라 간단한 문서로 대체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실제 문서 발송을 전후로 한 정황들을 살펴보면 적시된 내용이 공식적인 업무와 유기적으로 연결됐다. 금융위원회는 8월 18일 가상자산 사업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현장컨설팅 결과를 공개, 특금법 이행 준비상황은 전반적으로 미흡하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튿날인 19일 금감원은 거래소를 대상으로 영업종료·폐업시 이행해야 할 사항들을 안내했다. 이후 금감원은 금융정보분석원(FIU)과 가상자산 거래업자를 대상으로 신고설명회를 개최, 폐업 절차와 관련된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전문가들는 이 같은 금감원의 업무 관행을 놓고, 감독 내용 전달에 따른 업계의 이의제기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포석이 깔렸다는 지적이다. 정수호 법무법인 르네상스 변호사는 “(부처의) 정식적인 절차를 밟은 내용이어야 이의를 제기하든 요구의 정당성을 다퉈볼 수 있는데, 비공식적인 경로로 의견전달 요청 시 이의제기도 어렵고 감독의 책임에 있어서도 자유롭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식 문서로 발송하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정부의 문서 공문은 다 공개가 되도록 하는데, 현재 금융당국은 가상자산 업무를 비공식적으로 진행하고 있어 시장의 반발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