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시기마다 생각나는 구절이 있는데, ‘D&Department’로 알려져 있는 나가오카 겐메이의 ‘디자이너 생각 위를 걷다’(안그라픽스) 중 “‘시작’에는 ‘설렘’이라는 즐거움이 있고 ‘지속’에는 ‘책임’이라는 즐거움이 있다. 중요한 것은 ‘설렘’과 ‘책임’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생각하는 태도다”라는 문장이다.
남의 일을 돕는 컨설팅은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요즘처럼 다이내믹한 변화 상황에는 익숙하던 일에도 새로운 질문과 예측 못한 변수들이 생기니 오롯이 우리가 책임질 수 있는 우리 것이 아닌지라 더 신경쓸 일이 많아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컨설팅의 매력을 꼽자면 새로운 일이 시작될 때마다의 ‘설렘과 기대’이지 않을까. 새 과제의 시작에서 느끼는 긴장감 또한 기분 좋은 설렘과 동기부여로 이어진다.
십 년쯤 된 일이다. 클라이언트팀에서 이런 고민을 이야기했다. “컨설팅 끝나면 시원하겠어요. 그런데 사실 저희가 제대로 f/u(팔로 업, 후속작업)할 수 있을지 걱정이에요. 운영 중에 이런저런 수정과 업데이트가 필요할 텐데, 디자이너들은 새로운 프로젝트를 더 선호하시죠? 저희는 항상성이 진짜 중요한데 협력사 미팅이나 채용 진행하다 보면 운영에는 대부분 관심이 적더라구요. 어렵네요.”
이 일 이후 우리가 만드는 크리에이티브에 책임감을 더하려면 무엇이 필요할지 고민했고, 생각 끝에 몇 가지 방법을 실천에 옮기게 되었다. 하드웨어와 콘텐츠, 인적자원 등 프로젝트 전체 예산에 운영을 위한 부분을 얼마나 고려해야 하는지 프로젝트 초기부터 검토했다. 컨설팅이 아닌 우리 브랜드를 개발하고 운영하다 보니 전략과 컨셉트 모두 중요하지만 실제 고객과 만나며 운영을 지속한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근육이 필요함을 체감했으므로.
프로젝트 오픈 후 일정기간 운영 현장을 관찰하고 문제 있는 부분들을 수정·보완한 후 과제를 완료하기도 한다. 브랜드 개발이나 공간기획 프로젝트의 마지막 결과물로 보통 운영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만드는데, 실전에 부딪히면 사전에 미처 검토하지 못한 일들이 벌어져 오픈 전에 만든 매뉴얼이 발목을 잡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는 프로젝트 론칭 후 운영을 직접 도울 수도 있는데 이 과정에서 아웃풋을 만드는 일 외에 디자인이나 브랜드 담당팀을 셋업하기도 한다. 실전 경험으로 컨설팅에도 균형감이 생기고 여러 형태의 이슈들을 접하면서 디테일과 섬세함을 기를 수 있다.
주변을 보면 이미 있던 무엇에 생명력을 불어넣거나 문제가 생긴 부분만 치료해야 하는 경우도 자주 생기는데, ‘크리에이티브한 일’이란 ‘완전 새로운 무엇을 만드는 일’이라는 통념이 자연스럽다 보니 ‘이전 것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일’에 크게 매력을 느끼지 못하기도 한다.
지자체를 비롯해 여러 조직의 리더가 바뀌어 기존에 진행되던 것들이 중단되고 새로운 일들이 벌어지는 상황을 볼 때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새로움인가 갸우뚱할 때도 있지 않는가.
새로운 시작점의 설렘과 지속가능하게 하는 보람 중 무엇을 더 선호하는가는 개인마다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과제를 수행하는 입장이라면 ‘과도한 설렘’이나 ‘변화의지 제로’의 극단적 선택이 아니라 가장 적합한 노선을 설정해야 한다. 또한 시작점에서도 적정한 책임감을, 지속과 유지에서도 꾸준함의 가치를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