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 카바이드(SiC), 갈륨나이트라이드(GaN) 등 화합물을 활용한 ‘차세대 전력반도체’ 생태계가 국내에서도 개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팹리스(Fabless)부터 파운드리, 중소 소부장(소재·부품·장비)기업, 반도체 원재료인 웨이퍼 제조사까지 차세대 전력반도체 시장의 가능성을 크게 보고 진출을 타진하고 있다.
28일 이투데이 취재결과 LX그룹 산하의 팹리스업체 LX세미콘(구 실리콘웍스)은 현재 SiC와 GaN 반도체 연구개발(R&D)을 담당할 경력 직원 채용을 진행 중이다.
회사 관계자는 “지난달 초까지 지원을 받아 고차 전형을 지나고 있는 것으로 안다”라며 “차세대 전력 반도체 사업을 미래먹거리 중 하나로 검토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파운드리 기업 중에선 8인치 업체 DB하이텍이 최근 SiC와 GaN 반도체에 대한 시장 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DB하이텍 관계자는 “사업 추진 여부에 대해선 확정된 바 없다”라면서도 “관련 시장 성장성에 대해 주시하고 있는 것은 맞다”라고 말했다.
소부장 회사 중엔 현재 국내에서 유일하게 SiC 전력 반도체 생산 체제를 갖춘 예스파워테크닉스가 대표주자로 꼽힌다. 이 회사는 포항에 연 1만4400장 규모를 생산할 수 있는 전력 반도체 설비를 소유하고 있다. 전기차 약 14만 대를 만들 수 있는 수량이다. 올해 1월 SK가 지분 33.6%(268억 원)를 인수하기도 했다.
특히 SK그룹은 차세대 전력반도체 기술 개발에 적극적인 기업 중 하나다. 계열사 SK실트론은 2019년 9월 미국 듀폰으로부터 SiC 웨이퍼 사업부를 약 5400억 원에 사들여 기술 고도화에 한창이다. 실리콘 웨이퍼 사업에서 안정적인 실적을 기반으로 전폭적인 투자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지난 4월 정부에서 차세대 전력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차세대 전력 반도체 기술개발 및 생산역량 확충 방안’을 발표했는데, 이후 생태계 조성에 속도가 붙었다는 게 업계 평가다.
한 업계 관계자는 "올해 들어 차세대 전력반도체 국책과제, 국책사업이 모두 진행 중이다. 금액이나 규모가 크진 않지만, 관련 기술을 가진 기업끼리 네트워크를 형성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현재 유력 반도체 기업 중 차세대 전력 반도체 사업에 대해 고려하지 않은 기업이 드물 것”이라고 귀띔했다.
화합물 전력반도체는 기존 실리콘 웨이퍼로 만든 반도체보다 10배 이상 큰 전압을 견딜 수 있다. 같은 크기의 반도체라도 더 많은 용량을 처리할 수 있는 만큼, 획기적으로 부품 소형화가 가능하다. 전력 소모도 줄어든다.
고용량과 경량화 필요성이 동시에 제기되고 있는 전기차, 5G(5세대 이동통신) 장비 분야에서 수요가 대폭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향후 몇 년간 폭발적인 성장세가 전망된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는 올해 GaN 전력반도체 시장 규모가 전년 대비 91% 성장한 6100만 달러, SiC 전력반도체는 32% 증가한 6억8000만 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만 국내로만 한정해서 보면, 2010년대 중반부터 뛰어드는 업체들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개화 단계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국내 전력 반도체 시장은 20억 달러에 달하지만, 기술력 부족과 해외 기업의 특허 선점으로 수요의 90% 이상을 수입에 의존 중이다.
협회는 "화합물 기반 차세대 전력 반도체 시장에 선제적으로 도전하기 위해 민·관 공동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차세대 전력 반도체 기술력 확보를 위한 신규 R&D를 적기에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