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금속노동조합 산하의 완성차 3사(현대차ㆍ기아ㆍ한국지엠) 노조가 정년 연장 논의를 본격화했다.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과 연계해 정년을 늘리자는 입법 청원을 국회에 제출하면서다.
14일 3사 노조는 국회 국민동의청원 사이트에 정년 연장을 법제화하는 내용의 청원을 제출했다. 국민동의청원은 개인이 법률의 제정 또는 개정을 국회에 요구할 수 있는 제도다. 제출된 청원은 30일 이내에 10만 명의 동의를 얻으면 최종 접수되고, 이후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에 넘겨져 심사를 받는다. 정부나 국회의원이 발의한 법률안과 똑같은 절차를 거쳐 본회의에 부의될 수 있다.
이상수 현대차 노조 지부장 명의로 제출된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과 연계한 정년연장에 관한 청원’은 국회 검토 절차를 거쳐 이날 오전 10시 30분께부터 일반에 공개됐다. 7월 14일까지 1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으면 소관위인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넘겨져 심사를 받을 수 있다.
청원은 ‘근로자의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정한다’라는 현행법 조항을 출생연도에 따라 차별화한 내용을 담고 있다. 1961~1964년생은 63세, 1965~1968년생은 64세, 1969년생 이후는 65세 이상으로 정년을 연장하는 방식이다. 청원에 따라 법이 바뀌면 국민연금을 받을 수 있는 시기까지 고용을 이어갈 수 있다.
이상수 지부장은 청원서에 “평균 수명은 연장되고 있지만, 노동자는 60세에 정년퇴직함에 따라 남은 생애에 대한 경제적인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라며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과 연계해 정년을 연장한다면 노동자는 안정적인 노후를 유지할 수 있고, 기업은 숙련된 노동력을 바탕으로 고부가가치의 상품을 생산할 수 있다”라고 청원 취지를 설명했다.
3사 노조 조합원만 해도 9만 명이 넘는 만큼, 노조가 제출한 청원은 10만 명의 동의를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노조는 20만 명 이상의 청원도 가능하다며 조합원과 가족의 동참을 촉구하고 있다.
노조는 퇴직 이후 경제적 부담으로 인한 사회문제가 심각한 만큼, 정년 연장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정년퇴직 이후 국민연금 수령까지 공백이 생기는데, 이를 법제화로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년 이후에 계약직으로 일하며 고용을 이어갈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 있지만, 한계가 분명하다고 지적한다. 현재 현대차는 ‘시니어 촉탁직’, 기아는 ‘베테랑 프로그램’이라는 이름의 고용 연장 제도를 운용 중이다.
노조 관계자는 “시니어 촉탁직 신분으로는 조합원 활동을 할 수 없고, 임금 수준도 낮아진다. 월 단위로 계약해야 해서 고용 안정성 역시 떨어진다”라며 “전면적으로 정년을 연장하자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국민연금을 받는 시점까지 일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완성차 업계는 난색을 보인다. 전동화 전환으로 생산직 수요가 줄어드는 상황에 대처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전체 생산설비가 전기차에 맞춰 교체되면 생산직 일자리는 30~40%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완성차 업계는 정년퇴직으로 인한 자연감소로 고용을 줄여나가며 전동화에 대응하려는 계획을 하고 있었는데, 정년 연장 시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임금 수준이 가장 높은 연령대의 조합원을 최대 5년 더 고용하면 감당할 수 없는 막대한 비용이 발생하는 점도 업계가 정년 연장에 반대하는 이유다.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한국은 미국, 유럽과 달리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할 수 없는 구조라 정년퇴직에 따른 자연적인 인원 감소로 전동화 전환에 대비해야 한다"라며 "정년을 연장하면 전동화 전환에 큰 차질이 생기고, 회사의 지속 가능성도 사라진다. 경영계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이다"라고 말했다.
노조는 청원 제출 후 지속해서 정치권에 정년 연장 문제를 강조할 계획이다. 정부도 고용 연장에 관한 방법을 고심하고 있어 정년 연장 이슈는 올해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 내년 대선과 맞물리며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