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이론(contract theory)에 따르면 둘 이상의 주체가 서로의 행동이나 그에 따른 결과를 모두 관찰하지는 못하더라도, 주체들의 행위 중 관찰 가능(observable)하거나 입증 가능(verifiable)한 것에 대해 명시적 계약을 맺음으로써, 서로의 이익을 상승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옷 가게 주인은 판매직원의 행동을 모두 관찰할 수는 없지만, 출근 일수에 대한 기본급과 판매 성과에 대한 성과급을 계약서에 명시함으로써 정상적으로 매장 운영을 할 수 있다. 두 주체가 서로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명시적 계약에 합의할 수 있다면, 모두 이득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택배 관련 문제는 이런 명시적 계약이 미비한 상황에서 발생한 분쟁이다. 입주민이 온라인에서 무언가를 구매할 때, “택배차가 진입하지 못하는 아파트여도 상품은 문 앞까지 배송이 되며, 그것이 완료되었을 경우에만 택배기사에게 배송비를 지급한다”는 식의 계약을 체결하지 않는다. 명시적 계약은 판매자와 택배회사 사이, 그리고 택배회사와 택배기사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입주민들은 택배 가격과 택배 회사, 그리고 도착 예상일 정도의 정보만을 확인하고 결제를 할 뿐이다. 입주민의 문 앞 배송에 대한 ‘기대’나 택배기사의 차량 지상 출입 ‘조건’을 명시한 두 주체 사이의 계약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의 대치 상황이 도덕과 윤리의 싸움으로 번져가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한 쪽은 생활의 안전을 위협받고 싶지 않다고 하고, 다른 쪽은 과도한 노동을 강요받고 싶지 않다고 한다. 위협이나 강요의 객체는 있으나, 그 주체가 명확하지 않다. 서로에게 요구하는 바가 있으면 시장이 형성되고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계약이 맺어질 수 있다는 것이 시장의 논리인데, 그것이 쉽지 않아 보인다. ‘시장에 맡기면 될 것이라는 기대’는 판매자와 구매자, 택배회사와 택배기사의 관계가 얽히고설켜 있는 이 상황 속에서 현실적이지 못한 기대이다. 계약의 미비를 넘어 시장의 미비가 해결되지 않으면 시장실패의 전형적인 사례로 빠져들 수도 있는 것이다.
시장을 명확하게 정의하기 위해 택배 서비스의 가치를 생각해 보자. 우리는 ‘서비스’를 고객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대가 없이’ 제공해 주는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서비스 노동자를 대할 때 상당히 고압적인 모습을 보이곤 한다. 하지만 택배와 같은 서비스 없이는 거래가 완성되지 못하여, 상품의 가치 실현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서비스의 가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그에 대한 시장이 명확하게 정의되고, 적절하고 명시적인 계약을 만들어 시장실패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팬데믹의 상황으로 우리 삶에서 서비스 시장의 중요성은 더 높아졌다. 4차 산업혁명 이후의 사회에서는 생산직보다는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이들이 훨씬 더 많아질 것이다. 택배 관련 문제는 시작에 불과하다. ‘서비스’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재고하고 그 시장을 명확하게 정의하는 연습은 오늘부터 실전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