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두 개의 통계는 국내 대기업이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다른 주요국들 기업에 비해 월등하게 크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이는 우리나라 산업구조에서 때로는 강점으로 때로는 약점으로 드러나는 두 얼굴의 배경이 된다.
정권의 정체성에 따라 보수정권은 강점을 더욱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산업정책의 방향을 잡았고, 진보정권은 약점을 지적하며 중소기업 중심으로 정책방향을 전환하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재계의 총본산인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회)을 제치고, 중견중소기업의 연합체인 상의(대한상공회의소)를 경제계의 대표격으로 내세운 것은 그 상징적인 사례다.
코로나19 팬데믹이 1년여 기승을 부리고 있고, 제4차 산업혁명이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급격히 확대·심화되고 있는 이른바 ‘전시(戰時)경제’의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의 이런 정책 방향은 문제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대기업 위주냐 중소기업 중심이냐를 구별짓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세계는 바이든-시진핑-스가 정권을 잇는 미·중·일 ‘3각(角) 체제’가 ‘제4차 산업혁명-포스트 코로나-기후변화’를 포괄하는 기술경쟁에서 패권을 다투고 있는 상황이다. 유럽의 강자인 독일도 만만치 않은 자세로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한국판 뉴딜정책에 승부를 걸고 있다.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로 기술경쟁을 넘어 산업경쟁력까지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대기업의 오너격인 총수를 상의 회장에 옹립한다거나, 대통령이 대기업의 첨단 기술개발 현장을 순시하는 데서 정부의 인식 변화가 다소 감지된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을 끌고 나가는 추동력이 약할 뿐 아니라 긴박감도 떨어지고 있다. 이는 정권 말기라는 시기적 약점도 있지만 나라 전체의 관심과 잠재력이 소모적인 정치 쪽으로 쏠리고 있는 것도 큰 요인이다.
기술패권경쟁 시대의 세계 경제 환경은 매우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시장에서는 ‘AI 캠브라기’(AI 관련 기술시장이 폭발적으로 커지고 있다는 의미), ‘코로나 싱귤래리티’(코로나 이후 사회의 급격한 변화를 의미) 등 신조어가 넘쳐나고 있다. 이제부터는 국가경쟁력을 지탱해 줄 중요 기술·산업에 대한 로드맵을 그리고, 거기에 맞는 기업군을 배치하면서 산업생태계를 구축하는 일을 일사불란하게 진행해야 한다. 벌써 시작됐어야 했다. 지금이라도 ‘100일 계획’ 같은 단기 실행계획을 짜서 한국판 뉴딜정책을 촘촘하게 채워야 한다. 이 작업을 대기업들이 앞장서서 끌고 나가도록 독려하고 투자를 유인해야 한다.
코로나19 백신 접종과 치료제 개발이 가속화되면서 포스트19 팬데믹 시대가 조만간 도래한다. 많은 전문가들은 앞으로 1~2년이 대전환의 시기가 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새로운 기업전략과 산업정책을 서둘러 추진함으로써 경제성장의 실마리를 잡아야 한다. 정부와 전 경제계가 머리를 맞대고 협업해야 할 때다. 급팽창 예산과 연구개발비 증액이라는 하드웨어 정책을 넘어서 기업이 앞장서는 소프트웨어 정책이 힘을 발휘하도록 해야 경제가 산다는 점을 문재인 정부는 유념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