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인플레가 올 가능성이 크다는 측의 주요 주장을 살펴보자. 첫째, 코로나19로 인한 저금리와 재정지출 확대로 시중 유동성의 과잉 상태가 장기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부동산 주식 등 자산가격의 급등에 이어 일반 물가의 상승까지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화폐수량설에 바탕을 둔 주장이다. 둘째, 주요국의 재정지출 확대에 따른 과도한 국가부채로 인해 인플레를 용인하는 정책의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인플레는 국가부채의 상환부담을 손쉽게 줄일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셋째는 중국 등 개발도상국의 고령화와 소득수준 향상으로 값싼 상품의 공급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요인들이 시장에 반영되어 장기국채 금리와 곡물 등 원자재 가격이 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인플레 가능성은 여전히 낮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첫째, 기술발전 등으로 유휴 생산설비와 인력이 계속 늘고 있어 세계적인 공급제약이 발생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둘째, 고령화는 공급제약 요인이기도 하지만 소비감소 효과도 커 전체적으로는 인플레 압력이 없다는 것이다. 셋째는 원자재의 핵심인 원유 가격은 신재생에너지의 확대와 셰일가스 기술의 발전으로 상승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다른 원자재 가격이 올라도 원유가격이 안정되면 광범위한 물가상승으로 이어지기 힘들기 때문이다. 넷째는 일본이 1990년대 말부터 재정확대 제로금리 양적완화 정책을 쓰고, 국가부채의 국내총생산(GDP) 비율이 200%를 넘었지만 인플레가 없었다는 것이다. 세계경제는 오히려 일본과 같이 고령화와 함께 나타나는 장기침체와 디플레를 더 조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앞으로의 경제를 정확히 아는 것은 인간의 능력을 벗어나는 일이다. 경제 현상은 여러 가지 원인이 복합되어 나타난다. 미국의 장기국채 금리 상승은 미래의 물가상승과 함께 경제성장세 확대가 동시에 반영된 결과이다. 어느 쪽을 중시하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진다. 물가를 중심으로 보면 인플레 우려이고, 성장세를 중시하면 경제에 대한 자신감이다. 2020년 중반까지는 장기금리가 오히려 낮고 단기금리가 높은 금리역전 현상이 지속되어 금융위기의 발생이나 경기의 장기침체가 주요 관심사였다. 이제 장기금리가 빠르게 오르면서 인플레 가능성이라는 새로운 고민을 하게 된 것이다.
시장은 장기간 비이성적으로 작동하여 경제 기초여건과 크게 괴리되는 경우가 많아 현실 상황에 대한 진단이 더 어렵다. 또한 경제는 관성에 의해 기존의 움직임이 계속 이어지다 실제 방향전환은 뒤늦게 일어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한 번 방향을 바꾸면 돌이키기는 어려워 눈에 바로 보이는 위기 속으로 빠져들어가곤 한다. 큰 배가 눈앞의 빙산을 피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거품의 붕괴, 금융위기 등이 그렇다. 인플레도 마찬가지라 눈에 보일 때는 피하기 어렵다. 지금으로서는 인플레가 올지 안 올지 확실치 않지만, 오면 충격은 엄청날 것이다. 조심하고 먼저 대비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미래는 불확실하지만, 세상에서 분명한 것 중의 하나가 공짜 점심이 없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인간이 불완전하다는 것일 것 같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 제로금리와 양적완화, 재정지출 대폭 확대 등을 통해 경기의 급격한 위축을 방지하였다. 2020년 코로나 사태 이후에도 같은 정책으로 경기를 부양하고 있다. 성격이 크게 다른 두 위기에 비슷한 정책을 무리하게 반복 사용한 부작용이 분명 있을 것이다.
2020년 위기에는 2008년과 달리 부동산 가격이 하락 없이 지속 상승하고 있다. 자산 가격만 보면 인플레는 이미 시작된 것 같다. 여기에다 각국 중앙은행의 수장은 적기에 금리를 올리거나 유동성을 줄여 인플레를 막을 수 있다고 자만하고 있는 듯하다. 중앙은행에 대한 시장의 신뢰는 부족하고, 지금의 사람도 과거 인플레 시기의 사람과 같이 여전히 불완전한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