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적으로 스팩(SPAC) 시장이 열풍을 불고 있다. 국내에서도 최근 공모 청약을 진행하는 스팩들의 경쟁률이 세자릿수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과열 양상으로 상장 전 주가가 상승하거나 부실기업의 상장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유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5일 메리츠증권에 따르면 2020년 SPAC IPO는 316건, 공모금액은 1036억 달러(약 117조 원)으로 전체 IPO의 절반 가량을 차지했다. SPAC만 보면 2019년 대비 공모금액이 7배 이상 증가했다.
스팩이란 투자자를 모집해 상장한 뒤 비상장사를 인수합병(M&A)해 비상장 기업이 상장하는 효과를 내게한다. 일종의 우회상장 방법으로 스팩이 ’Blank Check Company(백지수표 기업)’이라고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로인해 스팩은 스타트업들이 빠르게 기업공개(IPO)를 할 수 있는 창구로 여겨진다.
박승진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풍부한 유동성 환경이 유지되고 적절한 투자처를 찾는 자금들이 늘어나면서 이들이 스팩 시장에 유입됐고 스팩을 통한 IPO 규모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며 “올해도 2월 중순 기준 이미 443억7000만 달러(146건) 규모의 상장이 진행되고 있어 전년도보다 빠른 속도의 성장이 가능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내도 최근들어 코스닥시장에 상장을 추진하는 스팩들이 잇달아 세자릿수의 높은 공모 청약 경쟁률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공모 청약을 한 스팩 19개사의 평균 경쟁률은 3.14 대 1에 그친 것과 비교해 이례적이다. 지난달 18일~19일 청약이 진행됐던 IBK스팩15호는 101.73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으며, 1월 29일~2월1일에 진행된 하나금융스팩17호는 168.68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하나금융스팩17호는 일반 투자자에게는 120만 주가 배정됐는데 1억654만주가 청약됐으며, 2000억 원이 넘는 청약 증거금이 몰렸다.
그러나 스팩 시장 과열로 인해 합병가액 결정 전 주가가 상승하게 되면 투자자들에게는 악재가 될 수 있다. 박범지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주가가 먼저 상승한 스팩은 인수합병(M&A) 대상 기업을 찾는 과정에서 경쟁력이 낮아진다”면서 “최근 제2의 테슬라로 불리는 루시드모터스와 CCIV처럼 주가가 지나치게 높게 형성돼 합병 공시로 인해 오히려 주가가 급락하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또 스팩 상장하는 기업의 ‘질’을 둘러싼 우려도 커지고 있다. IPO에 비해 절차가 간단하고 규제에서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에 검증되지 않은 기업이 합병될 수 있는 문제가 빈번해질 수 있고, 과열로 인해 상장 스팩이 공급 과잉될 경우 대상기업들이 협상력에서 우위를 가지게 되면 부실 기업들의 상장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데이비드 솔로몬 골드만삭스 최고 경영영자는 “투자자들에게 선택권을 갖고 스팩 합병을 통해 상장하는 기업과 상장에 대한 선택지가 없어 스팩을 택하는 업체는 구분해야 한다”며 “장기적으로 볼 때 이러한 현상은 건강하지 않으며 기업가치가 모호한 회사에 대한 상장 붐은 지속될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