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이 국민연금의 공격적인 ‘스튜어드십 코드’ 행사를 촉구하고 나서자 재계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민이 낸 공적 연기금으로 정부가 사기업 지배에 나서고 있다는 비판마저 나온다.
16일 주요 경제단체와 재계에 따르면 당정의 잇따른 스튜어드십 코드 행사촉구가 자칫 국민연금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훼손하는 한편, 기업 압박 수단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전날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포스코의 최대 주주인 국민연금은 포스코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국민 기업이 되도록 '스튜어드십 코드'를 제대로 시행해 줄 것을 요구한다”라고 밝혔다.
최근 포스코의 산재 사고를 지적하며 안전조치를 촉구하는 발언이었다. 그러나 정기 주총과 최정우 회장의 연임을 앞둔 시점에서 사실상 국민연금을 앞세워 포스코를 압박한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국민연금은 포스코 지분 11.17%(973만4745주)를 보유한 최대 주주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1월 13일 기준으로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의결권 기준)을 보유한 코스피ㆍ코스닥 상장사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270여 개에 달한다. 한솔케미칼 지분을 14.00% 보유한 것을 비롯해 삼성증권 13.42%, 현대백화점 13.41%, GS건설 13.17%, 유한양행 11.86% 등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국가대표 기업인 삼성전자 지분도 11.00%나 갖고 있다.
지난해 말 상법과 공정거래법ㆍ금융그룹감독법을 포함한 기업규제 3법이 국회를 통과한 가운데 국민연금의 본격적인 주주권 행사를 촉구하고 나선 배경에는 협력이익공유제와 사회연대기금 등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먼저 정치권의 이런 발언이 국민연금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지적이 먼저 나온다.
전경련 관계자는 "해외 공적 연기금 대부분은 민간금융투자 전문가들이 합류해 투자를 결정한다. 반면 우리 국민연금은 기금위원장을 보건복지부 장관이 맡는다"면서 "여기에 기금위원 20명 중 8명을 정부 쪽 인사다. 사실상 기금운용본부가 정치권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구조"라고 말했다.
사정이 이런 가운데 정부와 여당 고위인사의 말 한마디가 사실상 국민연금에는 ‘업무상 지시’로 비칠 수 있다는 우려다.
일각에서는 당정의 이러한 발언에 대해 “다분히 정치적 발언”이라는 반발마저 나온다.
경총 관계자는 "매년 초, 기업 주총을 앞두고 당정이 기업을 압박하고 있지만 실제로 효력을 내지 못했다"라며 "준비 절차조차 갖추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현행법상 주주제안은 '경영 참여'가 목적이다. 상법상 주주총회 6주 전에 주주제안서가 대상 기업에 도달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정부가 "산재 기업"이라며 지적한 CJ대한통운은 내달 31일 정기주총을 앞두고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를 행사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6주 전인 이날까지 ‘주주제안서’가 도착해야 한다.
사실상 내달 CJ대한통운 정기 주총에서 국민연금의 주주제안은 불가능한 상태이다. 상법이 정한 절차 등을 간과한 채 기업을 압박하는 발언만 이어지고 있다는 반발도 여기에서 나온다.
“국민연금의 내부 기준을 간과했다”라는 지적도 나온다. 국민연금은 매년 기업들이 ESG(환경ㆍ사회책임ㆍ지배구조) 등급을 부여한다. 평가 등급이 두 단계 하락하면 곧바로 주주제안을 가능하게끔 내부 지침도 마련한 상태다.
정치권에서 타깃으로 삼은 포스코와 CJ대한통운은 ESG 평가에서 A등급에 해당한다. 안타까운 산재가 발생했지만, ESG 관련 투자와 기업 차원의 노력은 지속 중이라는 의미다.
재계 전반에 걸쳐 이런 우려와 반발은 공통적이다. 동시에 정치권이 공적 연기금의 본질적 의미를 인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이어진다.
'스튜어드십 코드' 행사는 그 자체가 주주와 기업의 이익 추구가 목적이다. 성장과 투명한 경영 등을 끌어내는 자율지침이기도 하다. 국민연금이 이런 근본 목적을 벗어나 정치권의 '정책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에 재계 전반에 이견이 없는 상태다.
무엇보다 지난해 연말 상법과 공정거래법ㆍ금융그룹감독법을 포함한 기업규제 3법이 국회를 통과한 시점에서 당정의 공격적 발언은 자칫 코로나19 출구 전략을 짜는 기업에게 압박으로 비칠 수 있다.
대한상의 기업정책팀 관계자는 “국민연금 역시 주주 가운데 하나인 만큼 정당하게 ‘주주권’을 행사하는 것 자체는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하면서도 “기업 역시 투명경영, 공정성을 추진 중인 가운데 단면적인 측면만 고려해 문제기업으로 낙인 찍는 상황에 대해 재계 전반이 부담을 느끼고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