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미국인 1640명 중 28%가 믿고 있으며, 공화당원으로 그 범위를 좁히면 44%까지 증가한다고 한다. 이 때문인지 현재 미국에서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이들은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남의 나라 이야기라며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우리도 일종의 가짜뉴스를 생산하고 공유하고 소비해왔다. ‘소금물로 입을 헹구면 예방이 된다’는 말을 믿고 실천하다 집단감염을 발생시킨 교회도 있었다. ‘10초 숨을 참아보면 자가진단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에 혼자 숨을 참아본 이들도 많을 것이다. 음모론이나 가십거리 정도로 치부될 만한 가짜뉴스를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믿고 있을까?
가짜뉴스는 ‘진짜뉴스인 것처럼 조작된 뉴스’를 의미한다. 우리 사회가 최근 들어 가짜뉴스를 심각한 사회문제로 받아들이게 된 이유는, 그것이 새로운 개념이라서가 아니라 그 양이나 파급력이 과거에 비하여 훨씬 심각한 수준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가짜뉴스 문제를 파헤치기 위하여 가짜뉴스 시장을 살펴보자.
가짜뉴스 시장의 수요자는 불특정 다수의 대중이고, 공급자는 각종 뉴스미디어이다. 미디어에는 신문사나 방송사와 같은 전통적인 뉴스미디어뿐만 아니라, 유튜브나 페이스북 같은 뉴미디어도 포함되어 있다. 19세기 후반 언론의 산업화와 기술의 발전은 자본력과 기술력을 갖춘 소수의 대중매체에 그 역할을 집중시켰다. 20세기 후반 인터넷이 발전하며 뉴스시장에 변화가 생겨났다. 웹페이지 하나로 미디어 운영이 가능한 저비용의 시대를 넘어, 이제는 페이스북 무료계정 하나로 미디어 역할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뉴스의 생산이 쉬워진 만큼 경쟁은 훨씬 치열해졌다. 생산자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남과 동시에 뉴스 생산의 속도가 경쟁의 핵심요소가 되면서, ‘클릭(click) 수’와 ‘공유(share)’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자극적인 제목을 달아 빠르게 노출시키는’ 전략을 구사하는 미디어가 많아졌다. 이 빈틈을 가짜뉴스가 파고들었다. 취재과정의 부실에서 나온 오보의 틈바구니에서, 의도적으로 생산된 가짜뉴스는 좀 더 자극적인 내용으로 클릭 수와 공유 싸움에서 심심찮게 우위를 점하곤 한다.
이 승리에 혁혁한 공을 세운 것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형태의 뉴미디어이다. 대중은 SNS상에서 뉴스의 소비자인 동시에 2차 생산자로 역할한다. 자극적인 가짜뉴스를 발견한 사람들이 공유 기능으로 그것을 재생산하고, 그 공유된 글이 또다시 공유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가짜뉴스는 너무나도 쉽고 빠르게 불특정 다수의 대중에게 소비된다. 대중은 저널리즘이나 사실보도의 기준에 얽매일 필요가 없기 때문에, 공유 기능을 올라탄 가짜뉴스의 전파 속도는 발 없는 말보다 빠르다.
그렇다면 애초에 이러한 가짜뉴스가 소비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심리학자들은 사람들이 동기화된 추론(Motivated reasoning)을 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쉽게 말하면 ‘믿고 싶은 대로 믿는 심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입맛에 맞는 뉴스만을 찾아 헤맬 것이다. 과거에는 그것이 그리 쉽지 않아서, 마음에 들지 않아도 신문이나 TV에서 전달해주는 뉴스만을 소비했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너무나 다양한 미디어가 존재하고, 그중에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내용의 뉴스를 무분별하게 생산하는 가짜뉴스 미디어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이들이 특정 대중들의 입맛에 맞는 가짜뉴스를 던져주면, 그 뉴스는 SNS를 타고 삽시간에 퍼져나간다. 마치 유행병(pandemic)처럼.
바야흐로 인포데믹(infodemic)의 시대이다. 확인되지 않는 정보가 유행병처럼 번져나가는 시대이다. 정치적인 선전을 넘어 의료지식과 관련된 가짜뉴스까지 퍼져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코로나19의 무서움에 가짜뉴스의 사악함이 더해져 엄청난 전염성과 파급력을 가진 허위정보가 무차별하게 공격한다. 이제 저널리즘의 대중화가 필요하다. 개인은 동기화된 추론이 아닌 비판적 추론을 해야 한다. 스스로 팩트체커가 되어 어떤 정보를 접했을 때 그것을 비판적으로 소화하고 가짜 정보를 걸러낼 수 있어야 한다. 가짜뉴스 백신과 치료제 개발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