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에 대한 애정을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킨 작가는 비디오아트로 잘 알려진 백남준(1932~2006)이다. 리안갤러리가 펼쳐낸 백남준의 예술세계는 넓었다. 잘 알려진 비디오 설치 작품 외에도 영상, 회화, 글씨, 드로잉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망라한 그의 작품을 볼 수 있다.
리안갤러리 서울은 이번 전시를 위해 백남준의 작품 27점을 한 자리에 모았다. 1980년대 미국 뉴욕에서 활동할 당시 백남준의 모습이 담긴 사진 8점도 포함된다.
텔레비전 조정화면 같은 오방색 배경 위에 사람의 형상이나 눈, 코, 입을 그린 '무제'(1994)부터 구형 텔레비전과 라디오 케이블을 이용해 3m 높이의 비디오 조각으로 제작된 '혁명가 가족 로봇' 시리즈를 토대로 한 판화 '진화, 혁명, 결의'(1989) 등을 볼 수 있다.
전시장 지하에 설치된 '볼타'(1992)는 3대의 소형 모니터로 이목구비를 만들고, 몸체에 해당하는 구형 TV 케이스 안에 네온으로 볼트(V)의 형상을 만들어 넣은 비디오 조각이다. 리안갤러리 안혜령 대표가 25년간 소장한 작품이다.
홍세림 리안갤러리 큐레이터는 '볼타'에 대해 "본격적인 전자시대가 도래할 것을 암시한 작품"이라며 "백남준 작가의 예지자적 면모가 돋보인다"고 설명했다.
'호랑이는 살아있다'(2000)는 새천년을 맞아 DMZ 2000 공연에서 선보였던 첼로와 월금 형태의 대형 비디오 조각을 변주한 작품이다. 1996년 뇌졸중으로 인해 거동이 불편해진 백남준은 아이처럼 단순한 선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휠체어에 앉아 크레파스로 어린이가 낙서하듯이 천진난만하게 호랑이를 그리는 작가의 모습이 영상에 나타난다.
1992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올림픽 100주년을 기념해 제작한 판화 '올림픽 센테니얼'(1992)은 비디오 아트에서 영향받은 모티프들과 국문, 영문, 한자로 적힌 메모로 이뤄져 있다. 홍 큐레이터는 "백남준의 회화엔 문자가 빠지지 않고 들어간다"며 "관람자에게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백남준과 첼리스트 샬럿 무어만의 협업 퍼포먼스를 촬영한 임영균의 사진 작품 8점도 눈길을 끈다. 샬롯 무어만이 백남준의 나체를 첼로 삼아 끌어안은 채 연주했던 공연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 여파로 당시 경찰까지 출동했다고.
리안갤러리가 백남준 개인전을 여는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1월 16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