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성 많이 늘었지만 급격한 물가 상승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 크지 않아”
“정책목표 간에 상충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으며,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어려워 자칫 중앙은행의 신뢰성 약화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주열<사진> 한국은행 총재는 17일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 한은 본점에서 열린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설명회 겸 송년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국회에서 한은 설립목적에 고용안정을 추가하는 한국은행법 개정안이 발의된 것과 관련해 이같이 말했다. 사실상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는 “급격한 고령화, 불평등 심화, 세계화와 급속한 기술발전 등 급변하는 글로벌 경제 환경 하에서 중앙은행이 고용에 좀 더 관심을 가짐으로써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뒷받침해야 한다는 법률 개정안의 기본 취지에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고용안정 책무를 추가할 경우 통화정책의 실제 운용 과정에서 적지 않은 어려움이 따르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예까지 들며 강조하는 모습이었다. 이 총재는 “예를 들자면,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이라는 기존의 정책목표에 고용안정이 추가될 경우, 기준금리라는 한 가지 수단을 통해 세 가지 책무를 동시에 달성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향후 국회를 중심으로 관련 논의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며 한은 설립의 궁극적 목적인 국가 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부합하는 최적의 방안이 모색되기를 기대한다”며 “한은도 그 과정에서 주요국 사례를 참고하고 외부 전문가 의견도 폭넓게 수렴해 관련 논의에 적극 참여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최근 하루 1000명단위로 급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가 경제성장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봤다. 이 총재는 “코로나19 전개상황을 보면 (11월말) 경제전망 발표시 예상보다 좀 더 위중하고 좀 더 심각하다. 사회적 거리두기도 당초 예상보다 강화됐다”며 “도소매업과 음식·숙박업 등 대면서비스를 중심으로 소비가 당초 봤던 것보다 부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의 확산세가 조기에 진정되지 않는다면 사회적 거리두가가 광범위한 지역에 시행될 것으로 보여 앞선 두 차례 확산기보다 부정적 영향이 클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또 “감염병 확산세가 겨울을 넘어 좀처럼 꺾이지 않는다면 소비위축이 내년 성장률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그는 “경기를 받쳐주는 수출은 반도체를 중심으로 회복세가 이어질 것이다. 백신 보급으로 생각보다 빨리 진정될 수 있다면 수출은 생각보다 호조를 보일 수 있겠다”며 “최근 코로나19 확산세로 전망 당시보다 불확실성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올 겨울중 어떻게 진행될지 지켜본 후 성장률 조정여부를 말하는게 좋겠다”고 밝혔다.
앞서 한은은 코로나19가 올 겨울을 정점으로 해소되는 기본시나리오를 가정해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8%에서 3.0%로 상향조정한 바 있다. 기획재정부는 이날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면서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3.2%로 예상했다.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확대된 유동성이 급격한 물가상승을 유발할 수 있다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 총재는 “전염병 위기는 언젠가 종식될 것이지만 과도한 완화조치를 일거에 되돌릴 수는 없어 인플레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주장이 많다. 반면 과겅와 같이 곧바로 인플레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상반된 인식도 있다”며 “개인적으로는 유동성이 많이 늘었지만 급격한 물가 상승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