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보다 삶의 질...실리콘밸리, 코로나發 인재 대이동

입력 2020-11-23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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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트위터 등 IT 대기업 떠나 스타트업 문 두드리는 고급 인력들

고액 연봉과 최고 수준의 복지를 내세운 미국 실리콘밸리의 인재 유치전이 이젠 먹혀들지 않고 있다. ‘실리콘밸리 드림’을 꿈꾸며 몰려들었던 고급 인재들이 새로운 삶을 찾아 작은 스타트업으로 떠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뜻밖의 ‘성찰’이 몰고 온 변화다.

22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 지방 변두리의 스타트업들이 예기치 못한 인재 풍년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인재도 보통 인재가 아니다.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실리콘밸리 내로라하는 기업 출신들이 몰려들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치열한 삶에 닳고 닳은 이들이 삶의 질이 보장되는 스타트업으로 탈출을 꿈꾸면서다.

미네소타주에 위치한 스타트업 블루밍턴은 실리콘밸리 출신 인력 채용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연봉은 부르는 게 값인 데다 화려한 도시를 떠나려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다. 그러나 7년 만에 격세지감을 느끼고 있다. 5월 이후 10명이 넘는 페이스북, 트위터 출신 인재들이 이력서를 들이밀었다. 디핀더 싱 블루밍턴 창업자는 “구글, 테슬라로의 인재 유출은 있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며 신기해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다. 수년간 실리콘밸리는 고급 인력들을 빨아들이는 인재 블랙홀이었다. 사람들은 등골이 휠 정도의 집값과 교통 지옥을 감수하면서도 실리콘밸리로 몰렸다. 기업과 투자자들이 앞다퉈 찾아오는 혁신의 심장부가 보장하는 경험과 영감을 누리기 위해서였다.

견고했던 성을 허문 건 코로나19였다. 사람들이 삶의 가치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던졌다. 돈과 자부심으로 살 수 없는 삶에 눈뜨면서 페이스북, 트위터, 리프트,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등 내로라하는 대기업에서 일하던 인재들이 소규모 스타트업으로 기꺼이 터전을 옮기기 시작했다.

비영리기구 원아메리카웍스가 지난 5월 이후 인디애나폴리스, 피츠버그, 콜럼버스, 오하이오에서 개최한 채용박람회에 참가한 3800명 이상의 구직자 가운데 실리콘밸리와 뉴욕 출신이 각각 25%, 9%였다.

MS 산하 깃허브 부대표를 지낸 필립 루드케는 유타주에 있는 스타트업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다른 문화와 환경에서 새로운 것을 시작할 기회였다. 삶의 근거지에 대한 고민이 결정적 요인이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가 몰고 온 생태계 변화도 이직의 동기부여가 되고 있다. 가이 버거 링크트인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코로나19로 소비자가 찾는 상품과 서비스에 급격한 전환이 이뤄지면서 스타트업들이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이 제공됐다”며 “추진력을 얻은 스타트업들이 인력 채용에 적극 나서고 있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인력 대이동에 따른 인재 분산이 기업 환경과 도시 풍경, 자금 흐름에까지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평가한다. 로스 디볼 하트랜드포워드 이코노미스트는 “잘나가는 실리콘밸리 출신 인재를 영입한 스타트업들은 벤처 캐피털로부터 자금을 유치하기 쉽다”면서 “네트워킹을 이해하고 있는 이들이 사업을 구축, 일자리 창출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언뜻 보기에는 고급 인력들이 눈을 낮춘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친환경 실내 농장 스타트업 앱하베스트는 최근 실리콘밸리와 뉴욕 출신 임원급 두 명을 고용했다. 전직 구글 이사였고 임파서블푸즈에서 최고인력관리책임자(CPO)로 근무했던 마르셀라 버틀러는 앱하베스트에 오기 전 실리콘밸리 기업 두 곳과 접촉했다. 그는 실리콘밸리가 지닌 ‘결핍’의 문화를 떠올리면서 마음을 굳혔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동네이지만 충분한 시간도 공평도 없는 곳이 바로 실리콘밸리였다고.

버틀러의 연봉은 10만 달러 이상 줄었다. 하지만 그는 “돈 액수는 줄었지만 구매력과 삶의 질은 비교 불가능하다”면서 “실리콘밸리에서 발견하지 못했던 삶의 풍요로움이 이곳에는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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