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3일 부동산 공시가격을 시세의 90%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방안을 확정하면서 다주택자와 고가 1주택자는 갈수록 늘어나는 세금 부담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번 대책이 집값을 안정시키기보다 되레 임대차시장 불안을 더 부추길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집주인들이 올라간 보유세(재산세+종합부동산세) 부담만큼 임차인(세입자)에게 전가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시세 반영률 목표치인 90%는 부동산공시법 상 '적정가격'을 공시하도록 한 법률 취지에 따라 최대한 시세를 반영하되, 공시가격 조사·산정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차를 감안했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또 단독주택과 공동주택 등 유형별 형평성 확보와 가격대별 시세 반영률 차이도 감안했다고 부연했다.
최근 리얼미터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정부의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에 대한 질문에 응답자의 51.2%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서울ㆍ수도권 주민들의 반대는 더 거셌다. 수도권에선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에 동의한다는 의견이 39.8%, 반대 의견이 52.6%였다.
'꼼수 증세' 비난과 반대 여론에도 정부가 숙의 없이 공시가격 현실화율 90%에 집착한 건 결국 '정치적인 목적'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 교수는 "조세 저항 등 역풍 가능성에도 정부가 (공시가격 상향 조정을)밀어붙이는 건 세수 확대로 복지 정책에 집중하기 위한 꼼수가 아니겠냐"며 "정부와 여당이 부동산 대책을 정책이 아닌 정치를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주택 재산세 감면 대상을 1가구 1주택자 9억 원 이하가 아닌 6억 원으로 정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특히 '민심 달래기용'으로 내놓은 재산세 감면 정책이 실효성을 발휘할 지도 의문이다. 공시가격별 감면 액수를 보면, 1억 원 이하는 최대 3만 원, 1억~2억5000만 원 이하는 3만~7만5000원 수준에 그친다. 2023년까지 시가 9억 원짜리 주택 현실화율에 제고 기간을 준다고 하지만 조삼모사가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 랩장은 "1주택 보유자의 재산세 부담 완화는 반가운 일이나 서울 집값이 이미 높아질대로 높아진 데다 3년 간 한시 적용하는 점도 아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초미의 관심은 과연 이번 대책이 주택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다. 일각에선 집값이 오르지 않아도 세금 부담은 피할 수 없는 만큼 다주택자와 고가주택 보유자들의 셈법이 복잡해질 것으로 봤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초고가 아파트일수록 공시가격 현실화율 속도가 빨라 서울 강남권이나 용산, 여의도 등지의 주택시장을 중심으로 매수세가 한풀 꺾이면서 집값 안정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며 "집값이 하락세로 접어들면 커진 세 부담 때문에 증여나 매각을 두고 고민하는 집주인들이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부동산을 처분하기보다 자식 등에게 물려주는 사례가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점치는 전문가들이 많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보유세 폭탄에도 절세 회피 매물은 은퇴자 등에 한정될 것"이라며 "증여가 늘고 매물이 줄면서 오히려 집값 상승을 부추길 수도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 세제 강화가 임대차시장 불안을 자극할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강남구 대치동 A공인 관계자는 "개정 임대차 2법(계약갱신청구권ㆍ전월세 상한제) 시행으로 전세난이 심각한데 보유세 부담마저 커지면 집주인들이 전월셋값을 올려 세입자들에게 이를 전가하는 움직임이 많이 나타날 것"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