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종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민우혁은 '광주' 무대에 오르는 것에 대해 다른 작품과 다르게 기분이 좀 이상하다고 했다.
"좋은 작품이 나왔다는 생각으로 즐겁게 작품 준비에 임했는데, 광주에 대해 알면 알수록 가슴이 먹먹해져요. 다른 공연은 열심히 준비한 후 관객에게 보여드렸을 때 박수를 받으면 '해냈다'라는 생각으로 가슴이 후련하거나 고생했던 것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보상받는 느낌이 들어요. 하지만 이 작품은 박수 소리가 조금 다르네요."
'광주'는 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모티브로 광주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기념해 만든 작품이다. 민우혁은 극 중 계엄군 편의대 소속 박한수 역으로 분한다. 시민들을 폭도로 몰라는 임무를 받고 광주에 파견되지만, 선량한 시민들이 폭행당하고 연행되는 참상을 목격하면서 이념의 변화를 겪는 인물이다.
편의대는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위대 내부에 잠입해 유언비어를 퍼뜨리거나 동향을 파악했던 특수부대다. 그들의 실체는 지난해 전직 미군 정보요원의 증언으로 드러났다.
"사실 잘 몰랐어요. 어렴풋이만 알고 있었을 뿐이었어요. 작품을 준비하면서 당시 시민들에게 폭도라는 낙인이 찍혔고 무고한 사람들이 목숨을 걸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광주는 우리 모두가 알아야 하는 역사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민우혁은 박한수라는 캐릭터의 기준을 세우는 과정에서 개연성을 찾기 위해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민우혁은 '박한수는 악마 같은 존재'라며 군인이기 때문에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스스로 악마가 되는 줄도 몰랐던 박한수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지나치게 박한수의 인간적인 모습에 집중해서도 안 됐다. 자칫 '박한수를 용서해주세요'로 비칠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다.
"박한수처럼 5.18에 투입된 군인이 상당히 많았을 거예요. 억울하게 악마가 된 사람도 분명히 있었겠죠. 하지만 혼란스러웠어요. 피해의식에 집중해선 안 되니까요."
그럴수록 민우혁은 고선웅 연출가에게 기댔다. 그 어떤 작품보다 연출과 대화를 더 많이 나눴고 서로 의견을 내면서 작품을 만들어갔다.
"어려운 주제, 큰 사건을 두 시간 반 동안 한 무대에서 표현하려면 전개가 빨라질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애를 먹기도 했죠. 연출님은 큰 그림을 갖고 계시지만, 배우 개개인이 생각하는 걸 수용하고 반영하려 하셨어요. 멋진 선장 같은 모습에 반해버렸습니다."
최우정 작곡가의 고난도 넘버를 소화하는 것도 만만찮았다.
"처음 음악을 듣고 제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고 했어요. 그만큼 도전이었지만 이제 이 세상에 못할 뮤지컬은 없겠단 생각이 듭니다."
민우혁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를 때면 광주 사람이 된 것처럼 뜨거워진다. 처음 단체로 노래를 부르며 '광주'에 출연하는 모든 배우가 눈물을 흘렸던 일도 전했다.
"2018년에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 무대에서 '부치지 않은 편지'를 독창했는데, 그땐 역사에 대해 무지했지만 그들의 숭고한 희생이 가볍게 보이면 안 된단 생각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열심히 불렀어요. 이젠 역사를 알고 부르니 단순히 울컥하는 게 아니라 피가 끓어요. 배우들도 '우리가 그 시대에 태어나 이 감정으로 광주에 있었으면 목숨을 걸었을 것 같다'고 말했어요."
뮤지컬 '레미제라블'에서 학생 혁명군 리더 앙졸라로 연기했던 민우혁은 '광주'가 한국의 '레미제라블'이 될 거라고 믿는다고 자신했다.
"책임감이 큽니다. 작품으로나마 사람들이 이런 역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광주 시민들이 폭도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목숨을 걸고 싸운 사람들,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이 있었다는 걸 아셨으면 해요. 그들이 어떤 각오와 마음으로 민주화 운동을 했는지 느낄 수 있는 작품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