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전기차(EV)의 급성장을 단순하게 수치로 따져서는 안 된다. 이미 글로벌 자동차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러 '저성장'이 지속하고 있다. 사정이 이런 가운데 EV만 급성장 중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이처럼 EV 수요가 매우 증가하는 만큼, 글로벌 주요 국가는 이에 대응할 수 있는 다양한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무엇보다 배터리 전쟁이 본격화되면 더는 기술력만 앞세운 국내 배터리 업계가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2040년까지 전체 신차의 약 60%가 EV라는 가정이 현실화된다면 그야말로 배터리 전쟁이 벌어질 수 있다.
연간 9000만 대 시장에서 EV가 5500만 대 수준으로 팔리게 되면 배터리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무엇보다 EV 배터리의 핵심 원재료인 코발트, 리튬 등의 안정적 확보가 절실하다.
중국은 2005년부터 남미, 아프리카에 각각 1449억 달러, 2720억 달러를 투자해 리튬과 코발트 등의 소재확보를 위한 자원외교를 추진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2009년 '희소금속 확보를 위한 4대 전략'을 수립하고 종합상사들의 해외 광산 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경제산업성은 올해 희토류, 코발트 등 34개 전략금속 공급 안정화를 위해 특별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리튬 및 코발트 자급률이 0% 수준(2017년 기준)일 정도로 배터리 원재료 대부분을 중국으로부터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 차원의 해외 자원개발이 절실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글로벌 EV 배터리 5위 권에 국내 메이커 2곳이 이름을 올릴 만큼, 기술력과 생산 능력에서 한발 앞서 나가고 있지만 이를 만들 수 있는 원재료 확보에는 중국과 일본처럼 국가가 직접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충전기 부족 문제는 여전히 숙제다.
충전기 설치와 관련해 정부의 갖가지 규제가 완화되고 있으나 EV 증가세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말 우리나라 충전기 수는 중국의 0.8%, 미국의 1.4%, 일본의 10.1% 수준에 불과하다.
일본의 경우 국토면적이 남한의 약 3.8배 크기이지만 충전기 대수는 지난해 기준 22만7000개로 한국 2만3000개보다 약 10배나 많다.
자동차 시장이 중국(20배)과 미국(10배), 일본(4배)이 우리보다 크지만, 충전기 수는 이런 비례에도 못 미친다.
규제도 더 풀어야 한다는 주장은 그치질 않는다. 서로 다른 이종 연료 간의 주유(또는 충전) 시설을 한 곳에 세울 수 있는 것도 2018년부터였다. 여전히 갖가지 규제 때문에 충전기를 세울 수 있는 장소 찾기는 그야말로 '숨은그림찾기'와 비슷하다.
당장 국내만 해도 충전기 보급속도보다 EV 판매가 크게 앞서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충전기 1대당 EV는 3.91대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 상태로 EV가 급증하면 2023년 충전기 한 대당 EV 11.1대, 나아가 2025년에는 14.8대까지 급증할 것으로 우려된다.
결국, EV 보급과 충전 인프라 확대의 열쇠는 정부가 쥐고 있다. 정부 차원의 지속적인 지원책이 EV 시장의 원활한 성장을 주도하는데 이견이 없다.
나아가 단순하게 충전기를 늘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얼마나 빠른 급속충전 기술이 나오느냐도 관건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도하는 국책 연구를 통해 효율적인 '초고속 급속 충전' 기술을 확보하고 이를 기업과 사회가 나눠쓸 수 있는 대안도 정부가 내놔야 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정부 지원과 관련해 "주유소와 주차장, 공동주택, 직장 등 충전수요가 많은 곳의 민간 사업자 충전 인프라 투자 유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V 보조금의 지속 확대도 정부가 내놓아야 할 해결책이다.
올 초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EV 시장을 선점하고 보급률을 높이기 위해 주요국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먼저 올해부터 EV 보조금을 폐지하기로 했던 중국 정부가 서둘러 보조금 연장을 추진하면서 시장은 지속 성장 중이다.
유럽도 본격적인 친환경차 정책을 확대하면서 EV를 지원 중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프랑스는 6000→7000유로 △독일은 3000→6000유로 △영국은 4000→6000파운드까지 인상했다.
트럼프 정부 들어 친환경차 정책이 주춤했던 미국마저도 내연기관 판매 금지를 예고하며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EV 확산 세를 지원 중이다.
우리 정부가 추진한 개별소비세는 EV에 특화된 것이 아닌, 전체 차 시장을 겨냥한 정책이다. 나아가 하반기에는 고급차 중심으로 정책 대상도 변경됐다. 자동차 선진국 가운데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EV 보조금을 확대하지 않은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김봉만 전경련 국제협력실장은 "최근 주요국들이 환경규제 강화로 내연기관 퇴출정책을 확대하면서 글로벌 전기차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며 "우리 기업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려면 정부 차원의 전기차 핵심 원재료에 대한 자원개발 노력이 필요하다. 기업 차원에서도 경쟁사 수준으로 다양한 전기차 모델 제품군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