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4일 스가 요시히데 신임 일본 총리와 첫 정상통화를 가진 것은 꼬일 대로 꼬인 한일 관계의 실타래를 풀어낼 실마리를 찾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양국 관계 경색의 핵심 요인인 강제노역 문제에 관해 시각차를 드러냈다는 점에서는 해법 찾기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부정적 전망도 많다.
우선 한일 정상이 얼어붙은 양국 관계를 정상궤도로 되돌려야 한다는 원칙에는 의견을 함께했다. 우선 문 대통령은 "한국과 일본은 기본적 가치와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동북아 및 세계 평화와 번영을 위해 함께 협력할 동반자"라고 했다. 이에 스가 총리는 "한일 양국 관계가 과거사에서 비롯된 여러 현안으로 어려운 상황이지만 문 대통령과 함께 양국 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구축해나가기를 희망한다"고 화답했다.
두 나라 간 인적교류가 재개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키웠다. 두 정상은 통화에서 한일 양국이 기업인 등 필수인력에 대한 특별입국절차를 앞둔 것을 환영한다는 뜻을 밝혔다.
코로나19 대응에 관해서도 한일간 협력을 강조하며 힘을 모으기로 합의했다. 문 대통령은 코로나 상황을 언급하며 "지금이야말로 양국이 서로 협력하고 양국 국민들에게 꼭 필요한 힘과 위로를 줘야할 때"라고 했다. 그러자 스가 총리는 "코로나의 여러 과제를 함께 해결해 나가길 바란다"고 답하면서 "문 대통령의 리더십 하에 K방역이 성공을 거두고 있다"며 덕담을 건넸다.
훈풍은 여기까지였다. 북한과 한반도 주변 정세에 관한 논의를 주고받으면서 두 정상은 미묘한 의견차를 보이기 시작했다.
우선 청와대는 한일 두 나라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위해 더 긴밀히 협력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일본 언론들은 스가 총리가 "한일 양국은 북한 문제를 비롯해 한일, 한미일 연계가 중요하다"고 언급했다면서 "한일 및 한미일 협력의 중요성에 대해 같은 의견을 보였다"고 전했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위해 협력하는 것과 한일ㆍ한미일 협력은 주체가 누구냐는 부분에서 차이가 있다. 문 대통령이 2017년 베를린 구상을 통해 밝힌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기존 과거 정부의 대북정책과 달리 남북뿐만 아니라 미국까지 포함하는 연속된 대화 과정이 핵심이다. 이 과정에 일본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스가 총리는 북한 문제 해결의 당사자로 '한일ㆍ한미일'을 규정해 '일본 역할론'을 내세웠다.
강제노역 문제 해법을 논의하는 과정에서는 양 정상의 입장차가 더욱 뚜렷해졌다.
청와대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양국의 입장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나 양국 정부와 모든 당사자가 수용할 수 있는 최적의 해법을 함께 찾아 나가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에 스가 총리도 현안 해결을 위한 대화 노력을 독려해 나가기로 했다고 청와대는 전했다.
하지만 일본 측에서는 스가 총리는 통화에서 아베 신조 전 총리의 강경노선을 그대로 반복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스가 총리는 일본 언론에 "오늘 회담을 시작으로 다양한 문제에 관한 우리의 일관된 입장에 기반해, 앞으로도 한국에 적절한 대응을 강하게 요구해 가겠다"고 말했다.
가토 가쓰노부 관방장관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스가 총리와 같은 입장을 재차 밝혔다.
그는 "한국은 중요한 이웃 나라며 북한 문제를 포함한 지역의 안정을 위해 한미일의 연계가 필수적이라는 인식은 변하지 않는다"면서도 "일본과 한국 사이에 징용공(강제징용자) 문제를 비롯한 어려운 문제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일관된 입장에 따라 앞으로도 (한국의) 적절한 대응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한일 간 외교 마찰을 풀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도 여전히 한국이 먼저 움직일 것을 요구한 것이다.
수출규제와 지소미아(GSOMIA) 등 강제노역 판결에서 파생된 과제가 여전히 산적해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청와대에 따르면 이날 회담에서는 이런 주제들에 관한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청와대 관계자는 "오늘은 정상 간 첫 상견례였다"면서 "물론 함축적이지만 다양한 현안에 대한 의견 교환은 있었고, 특히 현안에 대한 소통과 대화 노력을 정상 차원에서 가속화 내지 독려하기로 한 것에 대해서 의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