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민주화인사 화상대담' '국회 대자보' 등 아이디어 만발
“이브이(포켓몬)님, 좋은 아침입니다.”, “오, 캐리님 선곡 좋은데요?”
고요한 사무실의 적막을 깨고 잔잔한 음악 소리가 울려 퍼진다. 경직된 분위기가 풀리며 온라인으로 의견들이 쉴 새 없이 오간다. 문서작성 등 불필요한 업무가 사라져 자투리 시간은 더 좋은 아이디어를 생산한다. 괜찮은 아이디어는 즉각 현실에 반영된다. 퇴근 후 ‘업무 내용’의 카톡은 잘 울리지 않는다.
대한민국 국회 내 한 의원실 풍경이라면 믿을까. 평균 연령 만 34세 보좌진과 21대 국회 최연소 의원이 만들어 낸 ‘젊은 의원실’. 류호정(28) 정의당 의원과 보좌진들의 생기 넘치는 공간이자, 일상 모습이다.
류 의원은 “과거 몸담았던 업계(게임)도 딱딱한 분위기가 아니었고, 이 같은 분위기가 업무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면서 “젊은 보좌진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 편안한 업무 환경을 조성하게 됐다”고 말했다.
류 의원실은 정의당의 ‘여성 30%·청년 30% 당직자 비중’ 권고 사항을 반영해, 보좌진을 여성 50%, 청년 50% 이상으로 구성했다.
살짝 엿본 젊은 의원실 모습은 마치 의욕 넘치는 스타트업 분위기 같다. 이들은 서로 닉네임을 부른다. 포켓몬스터에 등장하는 ‘이브이’, 이름을 줄인 ‘쏜’ 등 다채롭다. 류 의원은 ‘호정님’으로 불린다.
소통도 초고속이다. 메신저, 메일, 업무 등록, 일정 관리 등 올인원으로 가능한 협업 툴(인트라넷) 하나로 모든 업무를 진행, 결과적으로 효율성도 높아졌다.
류 의원은 “툴 하나로 모든 소통을 하다 보니 외근 중에도 의견 조율이 가능하다”면서 “또 메신저도 업무와 사적(카톡) 용도를 철저히 구분해 개인 시간은 최대한 보장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형식을 요구하지 않고, 인쇄물을 없앤 이유다.
편안한 업무 환경은 자유로운 의견 개진은 물론 효율성 향상과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류 의원은 “보좌진들은 각자 잘하는 분야가 있어 늘 사안마다 의견을 개진한다”면서 “당론 등이 큰 틀에서 방향을 잡아준다면, 디테일한 요소들은 브레인스토밍 과정에서 보완이 된다”고 자부심을 내비쳤다.
실제 보좌진 의견이 반영돼 세간의 관심까지 받게 된 대표적 사례가 ‘홍콩 민주화 인사 화상대담’과 ‘국회 대자보’ 건이다.
인턴 비서 의견이 반영된 류 의원과 홍콩 민주화 시위를 주도하는 조슈아 웡 데모시스토당 사무총장과의 화상대담은 ‘국회의원 최초 홍콩 민주화 인사와의 대담’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이슈가 됐다.
‘비동의 강간죄’ 법안 발의에 앞서 곳곳에 노란색 대자보 100장을 붙인 것도 홍보팀 회의에서 나온 아이디어다. ‘소수정당 발의 법안은 묻히기 쉽다’라는 고정관념을 깨며 발상 전환의 해법을 내놓은 결과를 낳았다. 때마침 언론에서도 관심을 보이며 공론화로 이어져 보좌진들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보람을 느꼈던 성과물로 기억되고 있다.
류 의원이 그리는 의원실의 미래상은 ‘노동권이 보장되는’, ‘종이가 없는’, ‘환경을 생각하는’ 공간이다.
그래서인지 국회가 폐쇄되기 일주일 전인 지난 20일부터 이미 재택근무 체제에 돌입하며 ‘언택트 국회’를 미리 대비했다. 국회 내 300개 의원실 중 거의 가장 먼저다.
또 노동권 보장을 위해 ‘취업 규칙’을 들여다보며 가이드라인을 마련 중이다. ‘주 52시간제’ 준수를 위해 부단히 노력 중이며, 9명의 말 못 할 고충을 최대한 공유하기 위해 촉각을 늘 세우고 있다.
언제나 활짝 열려 있는 류 의원의 집무실. 형식을 없애고 자유롭게 의견을 낼 수 있는 토론의 장, 노동권과 생활권 보장 노력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이곳. 보좌진들이 “근무하는데 재미있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