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정권수립 이후 수차례에 걸쳐 5년에서 7년에 이르는 다년간의 ‘국가경제발전계획’을 채택했다. 초기 몇 차례를 빼고는 대부분 계획에 미달하여 몇 년의 보충기간을 두기도 했고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아예 다년간의 경제계획을 채택하지 않았다. 경제사정이 워낙 나빠지다보니 목표 미달로 인한 정치적 부담을 피하기 위해 그랬을 가능성이 높다. 한편 김정은은 2012년 권좌에 오른 후 경제정책에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였으며, 이를 2015년 경제 관련법 개정을 통하여 제도적으로 정립한 후 2016년 당대회에서 약 20년 만에 5년짜리 경제 청사진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이때는 전통적으로 사용하던 ‘국가경제발전계획’ 대신에 ‘국가경제발전전략’이라는 용어를 썼다. 이에 대해 ‘계획’은 구체적인 숫자로 표현된 목표를 제시하는 것인 만큼 미달할 경우의 부담을 고려하여 ‘전략’이라는 말을 썼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그런데 내년 1월에는 다시 ‘계획’을 내놓겠다고 한 것이다. 무슨 복안이라도 있는 것일까.
김정은이 내놓은 새로운 경제정책의 골자는 경제 단위들의 자율성 확대와 보다 폭 넓은 시장기능의 수용을 통하여 사회주의경제의 근본적인 문제로 지적된 경직성과 비효율성을 개선하고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실제로 북한 경제는 2014년경부터 사정이 나아지기 시작했고 2016년에는 3.9%의 성장을 보였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에 비추어 김정은 시대에 도입된 새로운 경제정책이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하였다는 관측이 가능할 수 있다. 근년에 들어 북한 경제가 어려워졌다면 2017년 이후 초강력 유엔제재 때문에 김정은의 새로운 정책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봉쇄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최근에는 여기에 코로나바이러스와 홍수 피해가 더해진 것이다. 이번 회의에서 나온 ‘예상치 못했던 불가피한 도전’, ‘조선반도 주변정세’는 이를 두고 한 말로 보인다. 모두 북한이 당장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들이 아니다.
그런데도 김정은은 2016년 당대회 결정의 시행과정에서 나타난 편향과 결함들에 대해 전면적, 입체적, 해부학적인 분석총화를 할 것이라고 했다. 문제의 원인과 그에 대한 대책이 서로 어긋나는 느낌이 든다. 돌발적, 외생적 요인에 대해 구조적인 차원에서 해결책을 찾겠다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년 1월 당대회에서 김정은이 무엇을 내놓을지 궁금증이 커진다. 김정은이 사용한 표현을 보면 무슨 대대적인 수정이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북한에서 대대적인 수정이라면 경제적인 차원에서 두 가지 길이 있을 수 있다. 하나는 더욱 과감한 개혁의 길로 나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금까지의 변화를 되돌려 과거로 회귀하는 것이다. 과거로의 회귀라면 이미 가본 길이다. 그것이 살길이 아니라는 것은 김정은 자신도 잘 알 것이다. 만약 더 과감한 개혁으로 간다면 그 길은 무엇일까. 김정은의 새로운 경제정책에서 가장 현저하게 누락된 것은 소유권 문제이다.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은 개혁 과정에서 예외 없이 사적 소유권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손을 댔었다. 이번 일이 11월 미국 대선을 고려한 행보라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트럼프가 재선되고 김정은의 입맛에 맞는 방향으로 일이 진행된다 하더라도 그에게 주어진 숙제와 리스크의 본질은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다.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의 예에서 보듯이 소유권에 변화가 없는 상태에서의 자율권과 시장화의 확대는 가속기와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는 것처럼 지속 가능하지 않다. 그가 무슨 기적이라도 일으키지 않는 한 말이다. 편향과 결함들을 입체적, 해부학적으로 분석총화하겠다는 김정은의 말은 문제가 외부가 아닌 내부에 있다는 것을 그가 알고 있다는 방증일 수도 있다. 아니라면 그러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