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 1억 엔(약 11억2000만 원) 이상의 일본 상장사 948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올해 이들 기업의 전체 설비투자는 전년 대비 1.2% 감소할 전망이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결정 등으로 세계 경제 불확실성이 커진 2016년 이후 4년 만의 감소다. 제조업은 1.4%, 비제조업은 0.9% 각각 감소할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기업들의 IT 투자액은 15.8% 증가한 4718억 엔(약 5조2980억 원)으로 2년 연속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제조업은 20.3%로 증가폭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할 전망이며 비제조업도 13.1% 늘어날 예정이다. 코로나19 여파로 기업들이 자본 지출을 줄인 가운데 IT 분야에는 적극적으로 자금을 투입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온라인 중심으로 급변하는 시장 환경을 반영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기업들이 판매 및 공급망의 디지털 변환에 속도를 내는 것이다.
기업들은 IT 투자를 통한 사업 혁신으로 경쟁력을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IT 투자에서 최고 증가율을 보인 기업은 일본 유통 대기업 ‘세븐앤아이홀딩스’로 전년보다 19.9% 증가한 1212억 엔을 투자해 판매 방법 등 개선에 나선다. 온라인 슈퍼마켓의 운송 요금을 유연하게 적용해 소비자의 편리성을 높이고 배달 직원의 부담을 경감시킬 예정이다.
일본 농기계 제조사인 쿠보타는 208억 엔을 투입,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와 협력해 농기계 및 건설 기계의 생산 및 판매 정보를 일원화해 관리한다는 계획이다. 건설 대기업 다이세이건설은 IT 투자를 17.1% 늘려 원격으로 공사 진행 상황을 확인하고 시공을 간소화할 예정이다.
이처럼 일본 기업들이 디지털 전환 투자에 공격적으로 나선 데는 IT를 활용한 조직 운영 및 사업 모델 혁신을 추진해 온 기업이 코로나19 여파에도 실적과 기업가치를 높인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
사카이 사이스케 미즈호종합연구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코로나19 국면에서 변화를 재촉한 기업가들이 디지털 전환 필요성을 다시 강조하고 있다”면서 “향후 IT 투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여전한 상황에서 일본 기업들이 디지털 전환으로 활로를 모색하고 있는 셈이다.
반면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산업의 경우 설비 투자가 큰 폭으로 감소했다. 항공 분야가 감염 확산의 직격탄을 맞은 가운데 일본항공(JAL)은 올해 투자를 1200억 엔으로 전년 대비 절반 수준으로 줄였다. 비행기 운항이 중단된 상태에서 현금 확보를 우선한다는 방침이다.
미·중 갈등의 유탄을 맞은 기업도 있다. 소니는 설비투자를 5000억 엔으로 2.5% 줄였다. 주요 수입원인 이미지센서의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에 대한 수출 감소 등이 반영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