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나 공기업 등 공적 기관은 국가에 대한 충성, 사회에 대한 봉사, 또는 공동체의 이익이라는 공적 목표를 추구한다. 따라서 공적 기관에 소속된 개인은 조직의 목표를 개인의 이익보다 우선시하게 된다. 때로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개인의 희생을 감수하기도 한다. 폭우나 가뭄 같은 자연 재해 때에는 휴가를 반납하고, 코로나와 같은 감염병에도 개인의 시간을 공동체를 위해서 사용한다. 비록 보수는 적지만 보람은 크고 그런 헌신이 사회를 굴러가게 한다. 이타적으로 살고 있다는 자부심은 이들을 움직이는 가장 큰 동기이다. 가끔은 비효율적인 조직 운영이나 일부의 우월적 태도로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그것이 공적 기능의 높은 가치를 부정하지는 못한다.
민간 기업은 부가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부가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본래의 목적인 이익의 극대화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과정에는 많은 사람들과의 협력이 필요하다. 생산을 위해 필요한 부품과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업체, 기술과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사내외 연구자, 판매를 대신해 주는 대리점이나 특약점, 그리고 고객, 이들 모두가 기업과 함께 상생해야 할 대상이다. 내부를 보면 회사의 방향을 제시하는 기획 부서를 비롯하여 영업, 생산, 관리 등 여러 조직이 유기적으로 협심해야 한다. 끊임없이 계속되는 각종 회의는 소통을 통하여 최적의 해법을 모색하기 위한 시간이다. 최적의 대안을 찾기 위해서는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각자의 입장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
애덤 카헤인은 그의 저서 ‘협력의 역설(Collaborating with the Enemy)’에서 ‘적화(enemyfying)’라고 표현할 수 있는 현상을 설명한다. 인간은 습관적으로 ‘적은 항상 내가 아닌 남인 법이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협력은 본질적으로 어려운 일이라고 그의 경험을 토대로 말하고 있다. 나의 생각이 틀릴 수 있다고 인정하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받아들여 나의 생각과 다른 결론을 내릴 수 있어야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무리한 협력을 추구하여 더 큰 갈등을 만드는 것 보다는 각자의 생각을 인정하면서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한다. 그는 이것을 ‘스트레치 협력’이라고 말한다. 자유와 개인주의 그리고 다양성이 커지면서 개인의 목소리는 높아지고 소속과 정체성은 불안정한 현대 사회에서 새겨들을만 한 협력의 방식이다.
기업 안에서 그리고 대외 관계에서 우리는 생각도 다르고 호감도 신뢰도 없는 사람과 더불어 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마주친다. 나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상대방의 이익을 무시한다면 어느 누가 기꺼이 협력하겠는가? 누구라도 자신의 이익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고 상대방을 대할 것을 권고한다. 내 자신이 양보할 생각이 추호도 없으면서 상대방의 양보를 전제로 하는 합의를 강요하면 진정한 의미의 협력이 이루어질 수 없다. 각자의 입장을 지키면서도 상호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대안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적어도 ‘현재의 상황이 바람직하지 않고 더 나은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는 상대방과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작은 전제에서부터 시작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