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도의 세상 이야기] 수소경제로 가는 길

입력 2020-07-16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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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도 수소융합얼라이언스추진단 회장(서울대 객원교수)

학창시절 화학 시간에 배웠던 원소 주기율표가 다시 내 주변에 있다. 시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외웠던 주기율표를 4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들여다볼 줄은 정말 몰랐다. 과거에는 주기율표의 가장 먼 곳에 위치한 원소였는데, 최근 들어 내 관심의 가장 가까이에 수소를 두기 시작했다.

1980년대 에너지 정책을 처음 접할 때 화석연료인 석탄, 석유는 탄소가 중심이었다. 그 당시 에너지 정책은 이 ‘탄소 화합물을 어떻게 하면 안정적으로 확보하느냐’의 싸움이었다. 국내에 부존 자원이 충분치 않았기에 가급적 안정적인 도입선을 확보하고, 탄소를 덜 쓰는 공급구조로의 전환을 시도했다. 이에 따라 원자력 기술 자립과 천연가스 도입이 본격 추진되고, 이 사업들은 국책사업으로 여겨졌다. 주기율표의 거의 마지막에 있는 우라늄과 플루토늄이 우리에게 필요한 전기를 석유파동 같은 외부 충격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으로 공급해주는 소중한 자원으로 여겨졌다. 환경 문제도 분진, 이산화탄소보다 아황산가스나 질소산화물 같은 산성 물질이 더 위험한 것으로 여겨졌다.

당시 물로 가는 자동차를 개발했다는 발명가들이 사무실에 들르곤 했다. 이들은 우리 경제의 석유 의존도를 획기적으로 낮추는 대담한 기술인데 지원을 꺼린다며 정부 관계자를 비난했다. 그러나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를 담당하는 전문가들조차도 이들을 에너지 법칙을 무시하는 이상한 사람들로 치부하고 피하기 일쑤였다. 그런데 2000년대 이후 기후변화가 인류의 가장 시급하고도 큰 과제로 부상하고, 그 주범이 화석연료의 사용이라고 차차 밝혀지면서 세계적인 에너지 전환이 시작되고 있다. 탈탄소 사회로의 전환 가능성을 연 것은 태양과 풍력과 같은 재생에너지를 사용하여 전기를 경제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기술 개발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새로운 발전설비의 반 이상이 석탄이나 석유가 아닌 재생에너지가 될 정도로 늘어났다. 이에 따라 재생에너지가 많이 보급된 독일 같은 나라에서는 풍력을 이용해 생산한 전기가 남아돌아 버려지고 있다. 물론 배터리에 저장할 수도 있지만 저장 용량과 시간도 한정되어 오히려 전력시장에 돈을 주고 팔 지경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풍력과 태양광 보급이 15% 수준에 이른 제주도에서는 이미 재생에너지를 이용한 발전이 전력시스템의 원활한 운영에 지장을 주고 있어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수소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 줄 유일하고도 효과적인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수소는 연료전지기술을 활용하여 전기와 열을 생산하는데, 그 과정에서 오염물질을 전혀 발생시키지 않고 물만 배출한다. 오히려 대기 중에서 수소와의 반응에 필요한 산소를 공급받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공기 정화를 하게 된다. 이것은 지난 1980년대 발명가들이 주장한 소위 물로 가는 자동차가 일상 생활에 나온 것을 연상시킨다. 어쩌면 19세기 중반 공상소설가인 줄 베른이 쓴 ‘신비의 섬’에 나오는 “그래, 친구들아, 나는 물이 언젠가는 연료로 사용될 것이고, 물을 구성하는 수소와 산소가 무한한 열과 빛의 원천을 제공할 것이라 믿는다. 물은 미래의 석탄이 될 것이다!”라는 꿈 같은 이야기가 현대 과학기술로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소가 우리의 주력 에너지가 되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많은 도전이 있다. 수소는 자연 속에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탄소와 결합한 석유나 석탄 같은 탄소 산화물, 질소 산화물 그리고 물에 화합물로 존재한다. 이들에 에너지를 투입하여 수소를 분리하고 결집하여야 비로소 에너지로 사용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재생에너지에서 생산된 전기로 물을 분해하는 경우가 아니면 탄소나 질소 같은 오염 물질이 배출될 수 있으므로 이를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어야 한다. 또한 수소는 가장 가벼운 물질로 밀도가 매우 낮기 때문에 이를 응집하려면 고압으로 압축해야 하며, 특히 대량으로 거래하기 위해서는 천연가스처럼 액화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천연가스보다 100도 이상 더 낮은 -254도 이하의 극저온으로 낮춰야 하는데 이를 견딜 운반 용기의 개발도 필요하다. 물론 기술적으로 이미 가능하지만 경제성을 갖기 위해서는 충분한 수요가 창출되어야 하며 이를 생산, 수송, 보관 및 배분할 인프라가 안전하게 구축되어야 한다. 이러한 과제는 한 나라 특정 기업만의 노력으로 이룰 수 없으므로 국가 간, 기업 간 국제협력도 동시에 추진되어야 한다.

인류는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하면서도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범지구적 노력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를 갖고 있다. 기후변화에 가장 적극적인 독일을 비롯한 유럽국이 수소의 가능성을 주목하고 수소경제로의 전환을 위한 전략을 최근 발표하였다. 우리 정부도 7월초 ‘수소경제위원회’를 발족하고 ‘수소융합얼라이언스추진단’을 수소진흥전담기구로 지정하는 등 수소경제로의 진입을 위한 실행에 돌입하였다. 우리의 과학과 기술이 주도하여 인류의 미래를 밝혀줄 수소 선도국이 되길 바라며 학창 시절 외웠던 주기율표를 되뇌어본다. “리베붕탄질산불네, 나마알규인황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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