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채운의 혁신성장 이야기] 리쇼어링은 혁신성장에 反하는 정책이다

입력 2020-06-15 17:26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코로나19로 글로벌 제조 공급망을 중단시키는 리스크가 발생하자 선진국들은 자국의 산업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리쇼어링’(reshoring: 제조기업의 본국 귀환)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중국의 제조업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에서 벗어나고자 중국에서 나와 본국으로 이전하는 미국 기업에 파격적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공급망을 안정시키고 국내 경제 활성화를 위한 한국형 뉴딜의 한 축으로 리쇼어링 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이전에도 ‘유턴 기업’ 지원이라는 이름으로 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회귀를 장려했지만 그 성과는 지지부진했다. 2013년 ‘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에 관한 법률’을 제정, 이전 비용 보조, 법인세 감면, 부지 지원, 규제 완화 등의 각종 혜택을 제공했다. 그러나 지난 7년간 국내로 돌아온 기업은 80여 개에 불과하며 그것도 절반가량은 현재 공장 가동을 중단하거나 폐업했다.

과거 유턴 정책이 실패한 것이 까다로운 지원조건에 있다고 인식한 정부는 이번에 지원조건과 규제를 완화해 실질적 혜택을 높이는 방향으로 개선했다. 해외사업장을 25% 이상 축소해야 한다는 조건을 없애고 생산량 감축과 비례해 세금 감면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 수도권 규제도 완화해 사업장을 수도권으로 이전하는 유턴 기업에도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이런 정부의 방침에 대해 당장 역차별이라고 반발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수도권으로 이전하는 유턴 기업에도 보조금을 지원하는 것은 지방 균형발전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리쇼어링에 대한 혜택을 키우니 국내에서 생산하는 기업을 차별해 홀대한다는 불만도 커지고 있다. 국내 생산을 고수해온 어느 중소기업인은 리쇼어링 정책이 ‘돌아온 탕자’를 우대하는 불평등 정책이라고까지 비판했다.

리쇼어링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우선 리쇼어링 기업에 대한 지원 조건과 혜택을 어느 정도로 할 것인지가 딜레마다. 혜택이 작으면 효과가 없고 혜택이 크면 부작용이 커진다. 미국은 공장의 해외이전에 따른 제조업 공동화 현상이 심각해 2010년 오바마 정부가 ‘Remaking America’를 외치며 제조업 부흥을 위해 리쇼어링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이 제조업 공동화 현상이 심각한 경우에는 리쇼어링 기업에 대한 혜택을 크게 해도 국내 기업의 반발이 적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아직 제조업이 강하며 국내에서 생산시설을 운영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많이 남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리쇼어링에 대한 혜택을 늘리면 국내 제조기업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소외감을 유발할 수 있다.

리쇼어링 정책은 기존 경제정책 방향과 정면으로 충돌해 정부 비판을 불러일으키는 악재로도 작용한다. 리쇼어링 정책의 성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부정적 예측은 대부분 우리나라의 기업환경이 악화하고 있는 현실을 이유로 꼽는다. 법인세율이 높고 각종 규제가 촘촘하여 기업 하기 힘든데 왜 돌아오겠느냐 하는 것이다. 유턴 기업을 활성화하려면 법인세를 낮추고 규제를 대폭 완화해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지만 결코 쉽지 않다. 무엇보다 리쇼어링 정책은 혁신성장에 역행한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 해외 진출 기업이 ‘국내 복귀’로 인정받으려면 해외사업장을 청산·양도·축소하고 해외에서 생산하는 동일한 제품을 생산해야 한다. 해외사업장을 청산하거나 축소해 국내로 돌아오는 기업이 얼마나 성장성이 유망하여 국내 경제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 든다.

국내로 복귀해 해외에서 생산한 것과 동일한 제품을 생산해야지 혁신제품이나 개선제품을 생산하면 리쇼어링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도 이해되지 않는다. 중국이나 동남아에서 이전하는 기업이 공장을 그대로 뜯어다 옮기지 않는 한 어떻게 동일한 제품을 생산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근본적으로 왜 해외로 나간 기업을 국내로 불러들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리쇼어링은 미국과 같이 광대한 시장을 갖고 있는 나라에나 적합하다. 우리나라처럼 시장이 작고 기업이 많아 과밀한 나라에 리쇼어링까지 시키면 경쟁이 과열되고 성장 기회가 제한된다. 리쇼어링의 전제는 유턴 기업이 국내에서 생산한 제품을 국내 판매가 아니라 해외 수출하는 것이다. 그러나 해외 투자 없이 국제 경쟁력을 유지하며 수출한다는 것은 불가하다.

세계 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위상이 높아진 것은 단순히 한국산 제품을 많이 수출했기 때문이 아니다. 현지 국가에 투자해 그 나라 경제와 고용에 기여한 것이 크게 작용했다. 그런데 리쇼어링 정책이 성공을 거두어 많은 우리 기업이 해외 공장 문을 닫고 철수해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하면 수출 시장에서의 영향력과 경쟁력은 치명타를 입게 될 것이다.

기업이 해외에 투자하는 것은 우리의 경제 영토를 확장하는 길이기도 하다. 우리 기업들이 해외로 나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도록 지원해도 부족한 판에 국내로 복귀해 토종 한국 기업으로 남도록 유인하는 리쇼어링 정책은 고민 없이 시류를 따르는 하책 중의 하책이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어떤 주담대 상품 금리가 가장 낮을까? ‘금융상품 한눈에’로 손쉽게 확인하자 [경제한줌]
  • 2025 수능 시험장 입실 전 체크리스트 [그래픽 스토리]
  • "최강야구 그 노래가 애니 OST?"…'어메이징 디지털 서커스'를 아시나요? [이슈크래커]
  • 삼성전자, 4년 5개월 만 최저가...‘5만 전자’ 위태
  • 고려아연, 유상증자 자진 철회…"신뢰 회복 위한 최선의 방안"
  • 재건축 추진만 28년째… 은마는 언제 달릴 수 있나
  • 법원, 이재명 ‘공직선거법 1심’ 선고 생중계 불허…“관련 법익 종합적 고려”
  • ‘음주 뺑소니’ 김호중 1심 징역 2년 6개월…“죄질 불량·무책임”
  • 오늘의 상승종목

  • 11.13 장종료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127,385,000
    • +4.09%
    • 이더리움
    • 4,606,000
    • -1.12%
    • 비트코인 캐시
    • 609,000
    • +0.33%
    • 리플
    • 1,000
    • +8.58%
    • 솔라나
    • 301,100
    • +0.87%
    • 에이다
    • 834
    • +2.71%
    • 이오스
    • 790
    • +1.94%
    • 트론
    • 253
    • +1.2%
    • 스텔라루멘
    • 181
    • +7.74%
    • 비트코인에스브이
    • 80,400
    • -1.83%
    • 체인링크
    • 19,980
    • +0.55%
    • 샌드박스
    • 417
    • +0.48%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