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C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항공의 인수 조건을 재협의하자고 채권단에 요청하면서 업계에서는 인수 무산 등 다양한 시나리오가 거론되고 있다. 양측의 신경전이 갈수록 치열해지면서 일각에서는 이행보증금 소송까지 가게될 경우 KDB산업은행이 대우조선해양 매각 실패의 전철이 되풀이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11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9일과 10일에 각각 HDC현산은 인수조건에 대해 원점에서 재협의가 진행돼야 한다고 밝혔고, 주채권단인 산업은행은 직접 협상테이블에 나와 조건을 제시하라고 요구했다.
업계에서는 HDC현산의 결정을 두고 크게 인수 포기 수순 밟기라는 의견과 가격 낮추기 돌입이라는 평으로 갈리고 있다.
HDC현산은 지난해 말 금호산업이 보유한 아시아나항공 구주 6868만8063주를 3228억 원에 인수하고, 2조1772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총 2조5000억원 을 투자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인수계약 체결 이후 아시아나항공의 재무구조는 계속 악화되고 있다. 이에 HDC현산은 입장문에서 “계약을 체결할 당시에는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인수가치를 현저히 훼손하는 여러 상황들이 명백히 확인됐다”고 강조했다. HDC현산 측이 실사 당시 확인했을 때보다 부채가 4조5000억 원 늘었다는 것이다.
우선 HDC현산이 인수 의지를 피력한 만큼 IB업계에서는 HDC현산이 채권단에 매각 가격을 낮춰달라고 요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채권단이 이를 받아들이면 구주 인수 대금으로 금호산업에 지급하기로 한 인수 금액 인하, 부채 감면 등의 논의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단, 합의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형 로펌 관계자는 “항공산업은 기간산업이고 아시아나항공이 공중분해 되면 많은 비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산은이 조건을 협상해보려고 노력할 것 같다”며 “그러나 상황이 쉽게 정리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회계법인 관계자는 “채권단도 인수조건 변경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정할 것이고 현재 시장 상황에서는 새로운 인수자를 찾기도 쉽지 않다”며 “산은은 최대한 HDC현산의 인수조건을 받아들여 가격을 낮춰준다면 HDC현산은 인수를 포기하진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IB업계 관계자들 대부분은 HDC현산이 인수를 포기하는 수순을 밟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인수가 무산될 경우 2500억 원에 달하는 이행보증금 반환 소송이 진행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이번 입장문 역시 인수 불발 시 법정공방을 염두해 HDC현산에 책임이 없다는 근거를 남기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SPA계약서에는 HDC현산 컨소시엄이 함부로 딜을 중단할 수 없는 조항과 아시아나항공의 재무상태에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온 상황이 발생했을 때는 HDC현산이 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는 조건 등이 들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산은은 2008년 한화그룹과 대우조선해양 인수 양해각서를 체결했지만 본계약을 체결하지 못해 3150억 원 이행보증금 반환 소송을 겪은 바 있다. 결국 9년 동안의 법정 소송을 벌여 한화그룹은 3150억 원 가운데 절반 이상인 1951억 원을 돌려받았다. 당시 대우조선해양은 제때 주인을 찾지못한 국민 혈세를 까먹은 최악의 딜이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번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무산돼 이행보증금 소송전으로 가게될 경우 산은은 대우조선해양 매각 실패의 전철을 되풀이하게 된다.
IB업계 관계자는 “HDC현산이 공식적으로 인수를 포기하겠다고 하면 계약금을 돌려받을 수 없기 때문에 인수 의지는 강조하면서도 아시아나항공의 경영 부실 문제를 지적한 것”이라며 “HDC현산은 당연히 계약금을 포기 안할 것이며 장기간 소송전으로 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다른 대형 로펌 관계자는 “산은은 이미 대우조선해양의 전력이 있어 다시 그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계약서 조항을 철저하게 했을 것”이라며 “그러나 코로나19는 천재지변이기 때문에 계약서 상 ‘중대한 부정적 영향’으로 해석 돼 이를 근거로 계약 해지를 주장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