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친이 외국인인 한국인 자녀가 국내에서 아버지 성(姓)을 물려받을 때 외국 현지 발음대로 표기하도록 하는 현행 규정은 아동 인격권 침해에 해당한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의 판단이 나왔다.
이에 인권위는 외국인 아버지 성의 원지음(原地音, 원래의 지역에서 사용되는 음) 표기 방식에 따라 자녀의 성을 등록하도록 하는 현행 규정을 개정하라고 법원행정처장에게 권고했다고 1일 밝혔다.
인권위에 따르면 한국인 여성인 진정인 A씨는 대만인 남성과 결혼해 자녀를 낳았다. A씨 배우자의 성은 한국 발음으로 '가'(柯)이지만, 혼인신고 당시 담당 공무원은 관련 규정에 따라 대만 원지음인 '커'씨로 등록했다.
이후 이들은 자녀에게 아버지 쪽 성을 물려주기로 했고, 부모의 성 표기를 그대로 따라야 하는 규정에 따라 자녀 성도 '커'씨가 됐다.
뿐만 아니다. 한국인 여성과 대만 출신 남성이 결혼한 뒤 자녀의 성을 '소'(蕭) 씨로 등록하려 했지만, 아버지 쪽 성의 대만 원지음인 '샤오'(蕭) 씨로 등록하게 된 사례도 있었다.
같은 중화권이더라도 광둥어를 쓰는지, 보통어를 쓰는지 등에 따라 발음이 지역별로 달라지는데, 현행 규정을 적용하면 한자가 같은 성이라도 출신 지역에 따라 한국어로는 달리 표기되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진정인은 지적했다.
이런 사례가 나오는 것은 대법원 가족관계등록예규 451호(외국의 국호, 지명 및 인명의 표기에 관한 사무처리지침) 규정 때문이다.
해당 조항은 가족관계등록부와 가족관계 등록신고서에 외국 인명을 기재할 때 외국 원지음대로 표기하도록 규정한다. 이에 따라 한국인과 결혼한 외국인은 현지 발음으로 자신의 성을 등록해야 하고, 자녀에게도 원지음의 성 표기를 그대로 물려줘야 한다.
인권위는 "외국인 아버지의 성과 일치해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예외 없이 한국인 자녀들의 성을 원지음에 따라 등록하도록 하는 규정은 아동의 인격권과 개인의 자기 결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한다"고 판단했다.
이어 인권위는 "아동들이 외국인 성을 사용해야 함에 따라 불가피하게 가족 구성원의 국적이나 혼혈 여부 등 개인정보가 노출될 우려가 있다"며 "다문화 가정의 자녀가 외국인 성을 사용하도록 강제하는 현행 규정은 피해자들이 한국인으로서 정체성과 사회 소속감 형성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밖에도 인권위는 "다문화 가정의 수가 증가하고 있는 현실에 맞춰 이런 제한이 발생하지 않도록 일률적인 원지음 표기를 지양하고, 피해자의 자기 결정권이 존중되는 방식으로 규정을 개정해야 한다"고 권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