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오지만디아스

입력 2020-05-18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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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부 김벼리 기자

"내 이름은 오지만디아스(Ozymandias), 왕들의 왕. 내가 세운 것들을 보라."

영국의 시인 퍼시 셀리가 1818년 발표한 소네트 '오지만디아스'의 한 구절이다. 오지만디아스는 그 유명한 이집트 파라오 '람세스 2세'의 그리스식 이름이다.

이 구절만 보면 셀리가 오지만디아스를 칭송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시의 정수는 바로 이어지는 문구에 있다.

"전지전능한 이들이여, 절망하라!"

시가 절망으로 이어지는 것은 이젠 그 어떠한 위세도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사막 어딘가 반쯤 잠겨 부서진 그의 조각상 일부만이 찬란했을 그의 과거를 기릴 뿐이다.

최근 코로나19에 따른 경제위기로 기업들이 하나둘씩 위기에 몰리고 있다.

몇 달 전까지 위세 등등했던 거대 기업들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매출 500대 기업의 33%가 코로나19를 이겨내며 고용을 유지할 수 있는 기한을 '6개월'로 잡았다.

매번 성과급 파티를 벌여왔던 정유업계도 1분기에 총 4조 원이 넘는 적자의 쓴맛을 봤다. 구성원들의 사기를 다잡아야 할 CEO들마저 공공연하게 "역대 최악의 위기"라며 혀를 내두르고 있다.

재무구조가 괜찮은 기업들은 그나마 다행이다. 위태로운 경영 환경을 이어오던 기업들은 그야말로 '생사기로'에 섰다.

한진그룹과 두산그룹은 최근 유동성 위기에 정부와 국책은행에 손을 내밀었다. 당장 빌린 돈만 총 3조6000억 원에 달한다. 당장 숨통은 텄지만, 앞으로 이들에게 남은 것은 피 말리는 사업재편과 구조조정이다. 대주주의 투자계획 번복으로 자금난에 빠진 쌍용차는 상장폐지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권력과 위세의 끝은 한없이 초라하기 마련이다. 이번 위기로 기업들은 자신을 스스로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외형을 넓히는 식의 성장제일주의가 더는 답이 아닐 수 있다. 위기를 염두에 두고 변화와 혁신, 그리고 상생과 지속가능한 성장을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기업들의 핵심 가치가 됐다.

그것이 오지만디아스의 '절망의 표정'이 남긴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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